(초단편소설) '알랄라'는 행복했어

by 반동희

우리는 그들을 '미치광이'라고 했다. 몇몇은 하늘에 대고 중얼거린다며 '알랄라'라고 불렀다. 차별적인 단어라는 걸 모른 채 뉘앙스만 갖다 붙여 쓴 말이었다.


그들은 늘 후줄근한 옷차림을 했다. 그와 뚜렷이 대비되는 화려한 옷 색은 빛이 바래 누더기처럼 보였다.


우리가 본 미치광이 혹은 알랄라들은 찢어지면 찢어진 그대로 옷을 입는 재주가 있었다. 그들이 걸친 옷에는 남녀 구분도 희미했다.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거나 겨울에도 여름옷을 입는 아찔함도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삼한사온'이라는 한반도의 기후 법칙이 있다 하더라도 꽁꽁 언 빙판을 반팔 티셔츠로 걷는 장면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그들이 반팔 차림으로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볼 때면 벌겋게 달아오른 그들의 살갗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


그 정도로 터질 듯이 부어오른 그들의 피부 촉감이 궁금했으며 그들과 반대로 손난로를 주머니에 꼭 넣고 다니면서도 벌벌 떨고 있는 내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오늘도 알랄라 반팔이던데?"라고 학교에서 한 친구가 말문을 열었을 때 우린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마치 신발에 달라붙은 껌처럼 완전히 긁어낼 수 없는 입시 경쟁에서의 작은 유머였다.


"장난 아냐, 손난로 쥐고 있는데도 추워 죽겠는데 진짜 미친 거 같았다니까? 막 내가 알랄라보다 약해 빠진 것 같고 그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들었어."


"여름에는 두꺼운 패딩 입고 다니더니 진짜 장난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자 우리 동네 마스코트 알랄라."

"내가 진짜 시간만 있으면 알랄라의 하루를 추적해보고 싶다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진심 궁금하다.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누군가 알랄라라는 단어만 꺼내면 이런 식의 대화가 쉬는 시간 내내 오갔다.


더 재밌는 건 그런 알랄라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았다는 거다. 자주 보던 알랄라가 안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른 알랄라가 나타났다.


어느 날은 40대 중반의 여자 알랄라가 학교 근처를 배회했다. 그 알랄라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채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쉼 없이 주절거리며 다녔다. 얼굴에는 땟국물이 가득했으며 이는 누렇게 변색돼 돈만 좀 있다면 자일리톨 껌이라도 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가끔은 남자 알랄라가 등장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남자 알랄라는 180cm에 가까울 정도로 생각보다 키가 컸다. 큰 눈동자를 매우 크게 껌벅거려 어떤 애들은 '사슴 알랄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도 모든 알랄라의 공통점인 땟국물과 누런 이와 계절에 맞지 않는 옷과 속사포처럼 주절거리는 입을 갖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대학생이 되어도 학교 근처에서 그런 알랄라를 봤다는 거다. 그들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요즘 어딜 가든 똑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비슷한 김밥 분식점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했다.


대학생이 되어 시간 여유가 생긴 나는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시시덕거렸던 알랄라에게 말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론 알랄라라는 단어를 써선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나이였기에 속으로 '조금 이상한 사람들'과 같이 그들을 정의한 상태였다.


"선생님은 왜 늘 그렇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시죠?"

하루는 나보다 족히 20살 이상 많아 보이는 그 조금 이상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를 알아요?"

그는 긴 꽁지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답변보다 되려 질문을 먼저 했다.


"몇 가지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시잖아요. 게다가 매일 뚱뚱하게 꽉 찬 배낭을 메고 다니시고요. 어딜 그렇게 다니세요? 가방엔 주로 뭘 넣고 다니시죠? 학교 학생도 아니신 거로 알고 있는데."

나는 약간의 관찰 경험을 녹여 대꾸했다.


"그러니까 나를 아느냐고요."

이 양반이 또다시 자기 할 말만 했다.


"아, 알죠. 이렇게 독특하게 다니시는데 모를 리가요. 저 말고도 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모두 알 걸요?"


"그럼 좀 말해줘요. 나도 나를 잘 몰라서 배우는 중이니까."


이렇게 공허한 대화는 처음이었다. 더는 입을 열지 않고 돌아섰다.


내가 확인한 건 중·고등학교 근처가 아닌 대학 근처를 배회하는 '조금 이상한 사'은 비교적 발음이 정확하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그 또한 땟국물과 누런 이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대학 근처에서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에 일종의 좀 더 성숙한 '조금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결론 내리고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단 생각이 방학 도중 집에 성적표가 날아오는 것처럼 급히 날아왔다. 그저 입시에 시달렸던 학창 시절 웃을 거리가 너무도 없어 우리의 감정이 더 많이 투영된 것 같다고 치부해버렸다. '알랄라'를 공유했던 동창에게 전화해서 말 한번 붙여봤다고 자랑이나 늘어놓을 참이었다.


그때였다.


"난 당신네가 더 독특한데."


등 뒤에서 질문만 하던 인간이 비수를 꽂았다. 날이 선 매우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난 뒤돌지 않은 채 오른손을 휘저으며 '그만 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도 더는 말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된 지금의 나는 이따금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조금 이상한 사람'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생 때까지 매번 어딘가에 있던 그들을 못 찾고 있다.


그들이 허공에 대고 소리치던 모습을 본 지 오래됐다. 남들의 시선은커녕 자신의 시선마저도 무시한 것 같은 그런 마구잡이식의 창의적인 옷차림이 그립다.


알랄라로 웃음꽃을 피웠던 친구 중 한 명은 "실체가 뭔지는 몰라도 낙오자들은 지하철역이나 육교 밑에서 동전 구걸이나 하고 있을 거니 괜한 신경은 꺼"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진짜 그들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은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게다가 한 번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무엇을 요구하거나 구걸하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었다.


특히 그들은 우리에게 눈곱만큼도 궁금증이 없었다. 그들을 궁금해했던 건 늘 나와 같은 평범한 우리였다. 사실 살아가면서 평범하다는 게 뭔지 더욱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에 비하면 우린 평범했으며 지금도 평범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알랄라 혹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 생각난 건 얼마 전 선물 받은 화제의 베스트셀러를 읽은 후였다.


책을 봤더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 것', '자신의 삶을 살 것', '모든 선택을 스스로 내린 뒤 책임을 질 것',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 것', '끊임없이 행복한지 자문할 것' 등등의 말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바른 생활 수준이라고 판단함과 동시에 불현듯 우리가 웃음 토막으로 삼았던 알랄라들과 나이 먹은 내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 붙였던 조금 이상한 사람이 생각났다.


"정상적이라거나 혹은 평범하다는 기준이 뭘까?"

알랄란 단어를 공유했던 친구에게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하며 문자를 보냈다.


"삼시 세 끼 안 굶으면서 자기 기준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거 아니야? 지금 보니까 걔들은 행복했을 것 같아."

친구가 답해왔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 사이에서 그저 그 행운을 누리면 평범함을 넘어 엄청나게 행복하겠지. 그런데 그 행운 외에 진짜 자기가 원하는 다른 행운을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두 갈래 길이 있다고 쳐. 그럴 때 그중 두 번째 길을 걸었던 게 알랄라들이었다고 생각해. 난 걔들 부정적으로 보는데."

다른 친구는 이렇게 길게 답해왔다.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부연 설명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보자고. 어떤 사람이 브라질 국민으로 태어났어. 브라질이 우리 생각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 아니냐. 어쨌든 그런 곳에서 중산층 정도로 태어났어. 살기 괜찮겠지?"


난 얼핏 주워들은 그들의 여유로운 삶과 유연한 사고방식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곳에서의 중산층은 단순히 평범하다고 할 만한 표현 이상의 행복한 삶을 살 확률이 높았다. 난 즉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축구 선수가 겁나 되고 싶은 거야. 그런데 너도 잘 알지? 브라질에서 축구 선수가 된다는 건 거의 뭐 어마어마하게 어렵거든. 동네 꼬마도 우리보다 축구를 잘하니까. 아무튼 그렇다고 해. 그럴 경우 이 친구는 브라질이라는 괜찮은 나라와 중산층이라는 행운 사이에서 태어났음에도 현실의 행운보다는 이루기 힘든 꿈이란 불행을 보면서 그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네."

난 차분히 대꾸했다.


"그렇지. 왜냐면 축구 선수가 정말로 되고 싶은데 그 모든 걸 뛰어넘긴 어려우니까. 브라질이라는 현실적인 벽이 높으니까. 그때 포기하면 알랄라가 되는 거지. 반대로 다른 나라에라도 나가서 뛰겠다고 하면 평범이나 정상이 되는 거고."


"그럼 넌 포기했을 때가 알랄라다 이거지?"


"맞아. 걔들이 그런 거 아니겠어?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서 뭔가 하겠다는 것 없이 마구 살아가던 애들.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이가 누렇게 변해도 신기하게 굶지 않았던 애들. 노숙자도 아니고 거지도 아닌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부류지. 팍팍한 삶을 사는 나는 지금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친구는 확실히 그들에게 부정적이었다. 내겐 여전히 알랄라이거나 조금 이상한 사 풀기 어려운 실체 속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내가 물었다.


"꿈이 너무 커서 죽은 것만 같고 꼭 몽유병을 앓는 것 같다는 어느 랩 가사 주인공보다는 행복했겠지."


그들이 행복했을 거란 내 추측은 더욱 선명해졌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내 관념 안에서 알랄라를 거쳐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정리되는 와중에도 그들은 꾸준하고 분명하게 행복했을 거다.


베스트셀러를 내려놓은 뒤 연습장을 펼쳤다. 한가운데에 '행복'을 썼다. 글자에 동그라미를 친 뒤 마인드 맵을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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