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검정 손수레

by 반동희

"오늘도 만났군, 소녀 양반. 이걸 하루라도 줍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노인은 70살쯤 되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세요. 그래도 오늘 같은 추석 연휴에는 좀 쉬어도 되지 않으세요?"


여자아이가 물었다. 아이는 막 사춘기를 지날 나이의 중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그러니까, 하루쯤은 집에 있어도 먹고사는 데 문제없지 않으냐 그 소리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꼭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제가 본 1년 동안 할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않으셨어요. 심지어 오늘 추석인데도 나오셨을 줄은 몰랐다니까요."


슬리퍼를 신은 여자아이는 박스를 줍는 노인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라면 박스를 접어 자신의 손수레에 넣었다.


"허허. 그것 참 뚜렷한 관찰이구나. 그럼 소녀 양반은 오늘 왜 나왔니?"


"그야 뭐 갑갑해서죠. 저희가 큰집이라 친척들이 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부 저한테 성적 얘기뿐이에요. 제가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번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져서 답답하던 찰나였다고요."


"툭툭 날아오는 말이 쌓이면서 갑갑했겠구나. 뭔지 조금은 상상이 간단다."


노인이 손수레에 올린 라면 박스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할아버지도 답답하신가요?"


아이는 팔짱을 끼고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전혀. 그냥 나왔을 뿐이야."


"추석인 데도요? 가족이 오거나 아니면 친척들이 모이거나 하지 않았어요?"


"난 가족이 없어."


"마음이 아프군요. 오케이.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이런 날은 집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할아버지한텐 이게 일일 텐데 굳이 이런 날도 박스를 주우러 나오신 이유가 궁금한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노인이 끈으로 손수레 위를 잘 정돈한 뒤 아이 앞에 쭈그리고 마주 앉았다.


"잘 생각해봐요. 저는 학생이니까 공부가 일이잖아요. 그런데 가끔은 너무너무 하기 싫다고요. 특히 이런 연휴는 더욱 그렇죠. 다음 주에 쪽지 시험이 있는데도 분위기에 휩쓸려 놀게 되는 거,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사람이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허허. 어린 마음엔 당연히 그럴 수 있단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살면 금세 몸이 굳어. 몸이 굳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니? 그건 바로 사고가 굳는다는 뜻이야."


"사고요? 생각이나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그거야. 생각이 말랑말랑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는 거지. 내가 요즘 가장 갑갑해하면서 경계하는 거라고."


"그럼 할아버지는 스스로 딱딱하지 않고 유연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까지는 확신을 할 수 없어. 누구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다른 노인들처럼 딱딱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정말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난 젊었을 적부터 돈, 명예, 권력, 승진 같은 것에 전혀 욕심을 갖지 않았어. 잡으려고 할수록 늪에 빠진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던 거야."


"그게 어떤 의미죠?"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남들과 경쟁을 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소박하고 작은 것,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 더 나은 삶이란 갖는 게 아니라 지금의 것을 누리는 것이란 신념이지."


노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어려워요. 그런데 할아버지도 돈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으셔서 이렇게 박스를 주우러 나오신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단다. 난 생각을 하러 나온 거야. 길을 걷고 내가 박스를 주워 최소한의 생활비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상상하지. 내일 찬거리는 뭘 살까? 어떤 아이스크림이 싸면서도 맛있을까? 뭐 그런 것들이야."


"정말요? 생각하러 나오신다고요? 돈이 아니고요?"


"물론 일정 부분 돈이 생기는 건 좋아. 그런데 그게 첫째는 아니란다. 난 나라에서 연금을 받고 있어. 남들은 적은 돈이라며 보잘것없다고 하지만 젊었을 적부터 버리는 삶과 갖지 않는 삶을 살았기에 충분하단다. 박스는 정말 걷고 생각하기 위해서야."


"할아버지 유독 오늘 생각이란 말씀 많이 하시네요?"


"소녀 양반과 가끔 말을 섞긴 했지만 유독 오늘 그렇긴 하네? 허허. 그건 아무래도 생각이 곧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럼 할아버지는 생각이랑 사람이 같다는 말씀이에요? 마치 윤리 시간에 배운 그런 것들 같아요."


"난 같다고 생각한단다. 들어보렴. 철학 이론 중 합리론이라는 게 있단다. 이 합리론을 주창했던 철학자 중에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있지. 철학의 물줄기를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바꾼 대표적인 사람이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긴말도 필요 없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 있지? 그걸 한 사람이야.


"아, 그 말은 저도 들어봤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그 말을 좋아하시다는 거죠? 그나저나 할아버지 되게 공부 잘하셨나 봐요. 철학자 이름까지 말씀하시고."


"허허.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소녀 양반,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라고. 허허. 어쨌든 이 데카르트라는 사람의 기본 정신은 지구 끝까지 의심하고 의심해 진리를 찾아내는 거였지. 하지만 나랑은 다르게 매우 극단적인 사람이기도 했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요? 잠깐 체크. 이건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요.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극단적이라니요?"


"들어보렴. 이 데카르트는 심지어 1 더하기 2가 3이 아니라 4인데 악마가 자꾸만 3인 것처럼 자기 생각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단적으로 의심하기도 했."


"참 웃기네요. 마치 우리 반 꼴등 소현이가 만날 수업시간에 자면서 막상 시험에서 꼴찌 하면 툴툴대는 것 같은데요?


"허허.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현이란 친구 친척들이랑 놀다가 귀가 가렵겠구나. 뭐, 아무렴 좋단다. 어디서든 중요한 건 다름을 인정하는 거니까."


"다르다고요? 차이점 뭐 그런 거요? 아차, 그러고 보니까 할아버지가 저번 주에는 다름을 인정하는 게 삶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하셨어요. 저한테도 항상 친구들과 생각이 다른 걸 갖고 상처받지 말라고 하셨고요."


"허허. 기억해줘서 고맙구나. 그렇지 소녀 양반. 난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단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보는 색은 어쩌면 전혀 다르다는 것이지."


"네? 그건 또 무슨 어려운 말씀이세요?"


"간단해. 누가 어떤 색을 초록색으로 인식할 때 다른 사람에겐 그 초록색이 완벽하게 같은 농도의 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어쩌면 초록색과 완전히 다르면서 평소에 내가 분홍색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 사람한테는 초록색일 수도 있다는 거야."


"에이, 할아버지 너무 멀리 가신 것 아닐까요? 물론 저도 제가 보는 초록색과 다른 사람이 보는 초록색을 완전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인정해요. 그래도 그건 아까 말씀하신 데카르트의 악마 같은 그런 느낌인데요?"


"그러니? 그래도 이해를 해줘서 고맙단다."


"뭘요. 다름이 중요하시다고 하셨잖아요. 할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소녀 양반은 정말 똑똑한 학생이야."


"제가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집 앞에서 할아버지를 뵙고 있지만 어쨌든 공부는 좀 하죠."


"그래. 그 공부와 더불어 또 다른 공부도 아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랄게. 아무튼 색 얘기를 좀 더 보자면 내가 세운 그런 추측 때문에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색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원래 흘러가는 대로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은 유독 색 얘기를 끌고 가시네요. 그만큼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것 같아 기분은 좋아요. 그럼 제가 하나만 여쭤볼게요. 할아버지는 색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죠?"


"아주 좋은 질문이야. 말하려던 참이었단다. 좋아하는 색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 꽤 의미가 큰 거란다. 언어가 현상을 담아낸 통념을 가둬두는 양식장이라면 색은 현상을 뇌로 전달하는 언어 이전의 언어지.


"할아버지 지금 막 저희 윤리 선생님 같았어요. 어렵다고요. 언어 이전의 언어라는 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허허. 모든 말과 글은 쉬워야 한다는 내 철학이 잠시 깨졌구나. 미안해 소녀 양반."


"아니에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다시 보자고. 자, 어렵지 않아. 말 그대로 그 자체라는 의미에서 내가 말해본 거야.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눈에서 빛이 나가고 그 빛이 사물에 반사돼 다시 들어오면 뇌에서 인지하지. 그러니까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사물이 튕겨낸 빛을 뇌에서 해석해 인식한다는 거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데요. 그러니까 생김새가 다르듯이 뇌가 다를 테고, 그럼 튕겨낸 빛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거군요?"


"정말로 소녀 양반이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여기 나와 있나 의문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이해야. 뭐 그 공부와 세상 공부는 다른 면이 많으니까 일단 나도 존중하도록 하지."


"그럼 할아버지와 제가 보는 색이 다를 수도 있겠군요. 예를 들면 이 라면 박스와 손수레의 색도 우리 사이에선 다를 수 있군요?"


"적어도 요즘의 나는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지. 모든 사람이 색의 절대성을 다르게 보고 있다고 믿고 그런 것에서 여러 관점의 차이와 세상을 해석하는 차이가 출발한다고 생각 중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금의 슬픔을 인정할 수가 없거든.'


"지금의 슬픔이라고요?"


"바로 이런 슬픔. 가족과 친척이 오랜만에 모였어. 그런데 한 소녀가 그들과 얘기하는 대신에 그들이 날리는 스트레스를 피하지. 그리고는 문밖에서 박스를 줍고 있는 노인과 얘기를 할 확률. 그런 건데 사실 이건 대단한 슬픔이야. 생각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를 나누는 동시에 가치를 전파하는 대화가 가족 친지 사이에서도 막혀버리는 슬픔. 스마트폰이나 세대 차이가 가져오는 슬픔에 앞서 대화를 구성하는 본질인 시각과 해석의 슬픔 말이지."


"뜨끔해요. 역시 할아버지는 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는군요?"


"허허. 그런 것 같네 소녀 양반. 소녀 양반도 내가 갖고 있는 저 손수레가 보이나?"


"그럼요. 제가 본 것만 해도 벌써 1년째 함께 다니시는 걸요."


"그렇지? 그럼 소녀 양반은 손수레의 색이 뭐로 보이나?"


"그야 뭐 당연히......"


"아냐, 아냐, 대답이 필요 없지. 우린 지금 똑같은 검정 손수레를 보고 있는 거야. 우리는 대화를 했으니까. 내가 원하는 색의 절대성이 이것과 관련 있네. 절대성이 같은지 다른지 확인할 수는 없어도 서로 다른 눈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교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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