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가는 길

by 반동희

노량진을 논하는 건 늘 어렵다. 우연히도 이곳 생활을 견딘 이들이 내 주변에도 있어 조금은 쓸 수 있다. 공시생으로 머리 싸매며 노량진의 밤낮을 견디는 이들이 대한민국에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만인 대 만인이 종이를 두고 맞붙는 시험은 나와 늘 거리가 멀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내 주변에도 '노량진 사투'를 행하거나 행했던 이들이 있다는 건 통계를 살펴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인구 지표다.


오늘날 '공시 지옥'으로 대변되는 이 공간의 정의는 간단치 않다. 지금이야 노량진 대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사라져 가시적인 공간 분리감이 덜하다. 그렇더라도 육교가 횡단보도로 바뀌었을 뿐 속성은 똑같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노량진의 속살은 마치 시끌벅적한 수산시장의 횟감이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여전하다.


수많은 공시생은 다양한 성장 환경과 사회경험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공통의 시간을 삭인다. 노량진의 시계는 시험이 며칠 남았느냐는 디데이로 흐른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부터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책가방을 둘러멘 사람들까지 노량진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면서도 모두에게 닫힌 공간이기도 하다. 아무나 올 수 있지만 정작 아무나 오지는 않는다.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평범한 인간이 공시생이 되어 이곳에 발을 디딘다.


그들의 행동과 생활양식은 응시 과목과 유명 강사의 시간표로 정리된다. 누군가는 값싼 컵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누군가는 그나마 후원 자금이 두둑해 걱정 없이 괜찮은 밥을 사 먹는다. 하지만 모두가 허한 가슴을 안고 끼니를 채운다는 건 매일매일 똑같다. 오로지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위해 노량진 고시생들은 각자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스스로 발효한다.

아이러니한 건 그 와중에도 노량진 내 PC방과 만화방 같은 곳이 꽉꽉 들어찬다는 점이다. 그 한가운데에 앉아 주변을 둘러볼수록 '쾌락'이란 어느 곳에서도 피어날 수밖에 없는 잡초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 썩 측은지심이 더해진다.


노량진 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옷차림과 걸음걸이만 봐도 어느 시험에 응시하는지 구분이 된단다. 이쪽은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저쪽은 소방 공무원 공부에 한창이며 그쪽은 9급 공무원 응시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는 식의 분류다. 이것은 말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안에서 복닥거리며 생활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경험 축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특히 특정 시험의 합격자 발표 날이 되면 희미했던 경계선이 또렷해진다. 응시 시험 종류를 막론하고 지나가는 저 사람이 합격자인지 불합격자인지 분별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같이 수업 듣던 사람이 합격자 발표 날에도 매우 진취적인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걸 보면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가끔은 강의실에서 얼굴만 알던 사람이 합격자 발표 후 며칠간은 잘 나오다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아예 노량진 생활의 실패를 인정하고 떠났거나 속된 말로 '멘붕'에 빠져 반쯤 넋이 나간 채 꽤 오랜 시간 방황하는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아주 가끔 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발생하는데 그 사람이 그때 본 사람은 아니길 속으로 비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이들은 아직은 시험 준비하는 기계가 아닌 가슴속 감정이 들끓는 사람이란 걸 혼자 확인하곤 한다. 그때만큼은 같이 숨 쉬는 익명의 이들이 전국 모든 시험 경쟁자들 속 하나가 아니며 노량진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버텨내는 동시대인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노량진 공시생들도 사람 사는 세상이 모두 그렇듯 내부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공부 모임도 있고 구기 종목 운동 모임도 있고 종교 모임도 있다. 그 안에서 남녀가 눈이 맞아 커플이 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때 이를 바라보는 공시생의 심정은 정확히 두 갈래로 양분된다. 하나는 매우 부럽다는 것이고 하나는 여기까지 와서 연애나 할 정도로 한가하느냐는 비아냥 조다. 합격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두고 모두가 경쟁하는 외딴섬 같으면서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꿈틀대는 곳이기도 한 셈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제쳐두고 밀려 들어왔거나 진심으로 들어왔거나 할 것 없이 노량진이란 공간 또한 나름의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전히 천 원짜리 커피가 있고 가정집에서 같이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푼돈의 월세방이 있어도 그 안에서 북적거리는 인간의 모든 욕구는 어찌할 수가 없는 셈이다.


대한민국 수많은 청춘들이 어째서 이러한 공간에 모여 합격만을 위해 달려야 하느냐는 거시적인 담론을 떠나 미시적인 노량진은 그래서 여전히 세상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언제나 붙어있다.


'불금'과 '불토'의 노량진 역 9호선은 늘 내리고 타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는 이곳에 들어가고 누군가는 이곳을 빠져나간다.

그들 중 특정인이 공시생인지 아닌지는 누구든 훈련만 하면 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다음 시험에서 '될성부른 떡잎'인지 아닌지는 안에 있는 그들만이 추론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