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바이러스

by 반동희

예전엔 13일의 금요일이면 집에서 컴퓨터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예루살렘 바이러스'란 게 돌아다녀서 전원을 켜는 순간 컴퓨터가 완전히 먹통 된다고 어른들이 말렸다.


아버지는 아예 콘센트에 청테이프를 발라두고 출근했다. 그 당시 내 생각에도 아버지의 PC통신 바둑 기보와 주식 차트가 날아가고 내가 '수학 숙제' 폴더에 숨겨둔 고인돌 게임이 삭제되는 건 아찔했다. 이건 침대 뒤에 숨겨둔 한 달 치 눈높이 수학이 발각되는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었다.


그래도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똑똑한 친구들은 일찌감치 컴퓨터 날짜를 바꿔서 그날 하루 정말 '난 놈'이 되었다. 학교에서 집에 가도 고인돌을 못한다고 우울해하고 있으면 자기는 천하무적이라고 자랑을 하곤 했는데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내내 그 소리를 들으면 아니꼽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이 '난 놈'한테 잘 보여야 그 집에 놀러 가서 고인돌이나 하드볼 같은 야구 게임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 덫에 걸린 평범한 아이들은 이미 고인돌과 하드볼 아편에 취한 중독자라서 답이 없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논두렁' '밭두렁' 같은 불량 식품을 준비해 그 '난 놈'한테 잘 좀 봐달라고 대가성 로비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이 떼로 그 집에 몰려가 컴퓨터 뒤에 우르르 줄 서 있으면 그 집 친구 엄마는 내심 컴퓨터 없는 아이들이라고 측은하게 여겨 과자랑 요구르트 같은 군것질거리를 잔뜩 주기도 했다.


마치 똑똑해서 성공한 자식을 둔 부모의 품격 같은 거였는데 어쨌든 이런 난 놈들이 안랩 같은 회사 언저리에서 서성거려는 봤을지 돌아보니 궁금하다.


아무튼 13일의 금요일은커녕 24시간 온라인 게임이 풀 가동되는 요즘엔 다시 볼 수 없는 저 옛날 90년대 풍경이다. 사실 날짜 바꾸는 것도 그때는 도스에 'DATE' 같은 명령어를 입력하곤 했으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마우스로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돌릴 수 있어 누군가에겐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 상상이다.


그 '난 놈'이 'B디스크' 따위를 쓰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보여줬던 신문물이자 최고의 게임 저장 창고이며 '밭두렁' 20개 정도에 불법 복제해 팔곤 했던 CD롬도 퇴장한 지 오래다. 밀레니엄 버그를 통과하면서 어느 순간 날짜 타임머신보다 변화의 속도가 가팔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