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학교 보내지 마라"

기습한파의 상념

by 반동희

# "애미야 날이 너무 차다. 애 학교 보내지 마라"라고 할아버지가 말할 거다. 엄마는 못 들은 척 대답 없이 나를 흘기며 자동차 키를 찾을 게 분명하다. 아홉 살의 나는 이불속에서 똬리를 틀며 '오늘은 할아버지가 이겨야 구구단 시험 땡땡이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 내일 아침은 그랬으면 좋겠다. 딱 하루만 그때였으면 좋겠다. 추운 날 밖에서 일하는 분들이 더 고생인 거 알지만 진짜 딱 하루만 그날이었으면 좋겠다. 퇴근 후 자동차 기어를 'P'에 두면서 순전히 밥을 먹기 위해 해야 하는 노동들은 언제쯤 끝날까 곱씹어봤다. 물론 답은 찾지 못했으며 살아 있는 순간까지 그러한 것들을 할 수만 있어도 축복이자 행복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 아침에 길고양이가 자는 집 앞 박스를 봤다. 동네 '캣 맘'이 만들어준 공간인데 그 안에 꽁꽁 얼어붙은 물과 사료만 덩그러니 있고 고양이는 안 보였다. 며칠째 그 회색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최악의 경우 고양이는 어딘가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그렇게 태어나 죽고 짧은 생을 마감할까. 어쩌면 사는 게 고통이라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단정하기엔 사람이나 고양이나 모든 생명의 생존은 너무도 고귀하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 자동차가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차를 가지고 움직이는 듯하다. 시내에 차가 많았다. 집에서 광화문까지 나가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걸렸다. 거리에 코트는 보기 힘들며 목도리와 귀마개 등 온갖 방한 용품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휴대폰 배터리는 추위에 제일 먼저 반응해 쭉쭉 수명을 다했다. 지구 온난화는 이렇게 겨울에도 빙하를 녹여 칼바람을 몰고 온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그게 아니면 지구란 생태계 자체가 일정한 변화를 반복하기에 오는 현상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분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렇게 자연이 아주 조금 발끈하며 몰아붙이는 추위에 삶 자체가 휘청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리긴 정말 오랜만이다. 11년 전 GOP 근무할 때보다도 더 춥다. 그렇다면 지금 그 GOP는 얼마나 춥단 말인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말로 '평화'를 운운하는 이들보다 지금 바로 그 철책선 앞에 서 있는 장병들의 노고가 백만 배는 더 값지고 구체적이다. 중요한 건 늘 이렇게 품이 드는 것은 실제 그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힘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거다. 김훈 소설 <남한산성>에서 언 발을 동동 구르며 보초 근무를 서는 민초들이 떠오른다. 각종 병역비리와 사회 고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의무 회피가 스쳐 지나간다.


#큰 병으로 갑작스레 입원했다가 최근에 퇴원한 친구가 걱정된다. 알 수 없는 고통과 더 정확히 알 수 없는 회복이나 현재 상태 속에서 그러한 일련의 사정들이 추위보다 더 쌀쌀하다. 이 추위가 혹여 병세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최대한 따뜻하고 또 따뜻하길 바라며 몸도 마음도 모두 원상태가 되길 바란다.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맞으며 앓는 소리도 해보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노숙자들은 또 어디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문득 예전에 의류함에 쓰던 침낭을 버리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자기한테 그 침낭 좀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노숙자처럼 보였다. 그에게 난 얼만큼의 따뜻함을 줬을까. 사실 버리려던 물건을 얼떨결에 준 것이고 내 손에서 떠나 그에게 간 것이나 딱히 내 의도 면에서 다른 차이가 없다. 그를 도우려던 의도가 있던 게 아니어서다. 그 때문에 내가 그에게 완벽하게 마음까지 따뜻함을 줬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 당시에 그가 몸만큼은 따뜻했으며 지금도 어디선가 따뜻하길 기원한다.


# 구구단 시험만 걱정하던 아홉 살의 아이가 서른세 살이 되면서 기습 한파와 관련한 걱정도 많아졌다. 가진 것이 많아진 반면 잃었거나 잃을 것도 많아진 증거가 아닐까.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 흘러 나아가는 삶 속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여전히 모른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가 늘 현재에만 있어서 앞으로도 이러한 의문 부호의 연속이 삶으로 꾸려지진 않을까라고 추측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