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공무원

by 반동희

스포츠에서 제일 멋진 상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다. 맞붙을수록 내가 한 수 아래라는 게 드러나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때도 끝까지 기량을 펼쳐주는 쪽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깨진 쪽도 배운다. 실력의 부족함과 보완해야 할 점을 강자가 거울로 비춰주는 셈이다. 이는 상대를 존중하는 기본 정신이다. 상대도 나와 같은 선상에서 정당한 ‘룰’로 겨루는 인격체란 걸 인정하는 도덕이다. 그래야 이긴 쪽도 다음이 있고 패한 쪽도 다음이 있다. 패한 쪽의 실패감은 당장 창피하고 힘들더라도 다른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눈 감기 전 인생 마지막 게임이 아니라면 고수들은 이런 걸 전부 안다. 모르면 ‘룰’을 깨는 무법자이자 그거로 돈을 벌든 취미로 하든 ‘정서적 아마추어’에 불과한 하수다.


내 짧은 경험으론 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직위 대 직위로 각자의 소임을 수행할 땐 ‘정서적 프로의식’이 먼저다. 직위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과 싫어도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인식해야 한다. 개인 대 개인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의식 있는 사회를 지탱하는 ‘룰’이 그렇기 때문이다. 마주할 자신이 없더라도 실수하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실력이 부족해 밑바닥이 드러나면 보충하겠다고 하면 된다.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건 순간이고 남은 유효시간은 평균 수명 연장에 따라 매년 길어지고 있다. 실수와 실패를 얼마나 수정하고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더라도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유치원 졸업한 이상 조금은 달라진다.


온갖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이런 기본 인식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 나는 보통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질문하는 사람일 때가 많고 그들은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입장인데 감감무소식일 때가 그렇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면 그나마 낫다. 다른 곳에서 궁금증을 해소하면 되고 곱씹어보면 상대 입장에선 그게 최선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질문에 무대응인 건 양보할 수가 없다. 울분이 터진다. 여전히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적응이 안 된다. 조절하며 사는 타고난 승부욕과 그걸 스포츠로 해소하며 사는 내 나름의 방식을 그쪽에 몽땅 집어 던지고 싶어진다. 안 그래도 다쳐서 운동도 못해 욕구불만 상태인데 가슴 속 끓는점이 차올라 커피 봉지만 털어 넣으면 알아서 밀크커피가 될 것 같은 그런 심정이다. 전화를 돌리고 돌린 전화 속엔 담당자가 자리에 없고 그 담당자가 10분 뒤에 나타났는데 또 모르고 뭐 그런 식이다. 그러다 터지면 부랴부랴 익명의 인간이 나타나 ‘내가 대장이오’ 하는 것처럼 최대한 근엄하게 해명하는 뭐 그런 딱 망하기 좋은 뻔한 드라마 시나리오다. 이러니 공무원을 믿느니 기업인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들은 차라리 욕심 드러내고 돈 벌어 세금 내고 일자리라도 창출한다.


구구절절 따지자면 나는 일반 시민이자 직업과 직위에서 또 다른 시민이나 그들의 조직에 급여를 받는 개인이 근간이다. 반면 공무원은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생활비를 버는 공적인 기능인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는다? 정당한 룰 안에서 각자의 카드로 승부를 보자는데 게임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상대기만 행위이자 시민 무시 행동이다.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의혹이 막 샘솟는다. 싫으면 짐 싸서 집에 가든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하라고 인턴 시절 사수가 나한테 원고 던지며 했던 말을 울트라맨 불러서 ‘반사’ 하고 싶을 정도로 처지가 딱해진다. 아마추어 공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