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런 중구난방 독백
순식간이었다. 나뭇가지를 밟은 줄 알았다. 어딘가 ‘뚝’하는 소리가 났다. 너무도 청명했다. 그때였다. 내 왼쪽 무릎 위는 바깥쪽으로 돌았다. 무릎 아래는 안쪽 옆구리로 돌았다. 그 짧은 찰나에 사람 무릎이 이렇게 뒤틀릴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곤 정전이 됐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눈을 뜰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온주 변이 떠나가라 “악”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그런 목청을 뽑을 수 있다는 점에 눈을 감은 채 놀랐다. 정신을 차리니 응급차 사이렌이 눈에서 번쩍였다. 왼쪽 다리엔 아무 감각이 없었다. 끝이었다. 왼쪽 전방 십자인대가 날아갔다. 그 길로 입원해 새삼 많은 경험을 했다. 움직이고 싶었고 일어서고 싶었고 병원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걷고 싶었다. 두 발로 서는 날 비행기를 꼭 타겠다고 다짐했다.
9개월이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 9개월 됐을 때 걸었다고 들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아기보다 최소 2개월이 빠른 거라고 했다. 내 부모는 막 아장아장 걷는 애한테 슈퍼 들어가서 아무거나 고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기는 그 많은 것 중 막대사탕 하나 들고나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보행기에서 시작해 내 십자인대와 다리는 온갖 데이터를 받아들여 컸을 거다. 그것이 어느 날 끊어졌다. 단절과 다른 이의 것을 빌린 곁가지 재생이 반복됐다. 병원 생활로 일시 정지했다. 나보다 훨씬 증세가 심한 환자의 삶과 죽음이 오가는 그 경계선에서 덧없음과 포기와 체념과 고독을 지켜봤다. 그래도 희망은 잡초처럼 구석에서 싹텄다. 경험은 무서웠고 뜸 들지 않은 밥처럼 설익어 던져졌다. 그걸 융숭하게 차려내는 게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여행의 의미는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설익은 걸 익히는 척하며 낯섦과 새로움 사이의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떠났으며 언젠간 돌아가야 한다는 단언 속에서 제한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걸 추구한다. 내가 했던 것과 들었던 것과 봤던 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무형 자산으로 승화한다. 여행은 그렇게 무형의 탑 하나를 쌓는다. 설익은 걸 익힌 것처럼 내보인다.
당장 늙어 힘없는 사람과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들은 벌어놓은 돈과 이룬 일들을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 못했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을 얘기한다. 여행은 그런 가상체험을 던져준다. 결국 삶은 B와 D 사이에서 C 초이스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끝내 가지 않은 길을 돌아보고 곁눈질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오십 년이 간다. 뜻깊은 날만 모으면 평생 며칠 안 된다. 그런 며칠이 모여 멀리서 보면 인생이 희극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렇지만 가까이서 보면 삶은 결국 비극이다.
제주도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섬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며 멀리서 서울과 주변을 돌아봤다. 끊어지고 재생된 무릎으로 걸으면서 막대사탕 집듯 하나하나 잡았다. 아장아장 때는 한 개였지만 이번엔 두 개를 넘어 세 개 이상이 되었다. 욕심은 끝이 없어 ‘하나 더 하나 더’를 속에서 되뇌었다. 읽고 쓴 것과 막상 몸이 움직이는 간극 속에서 주절거렸다.
공항 쓰레기통에 물끄러미 내던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노동자를 보며 익명이 지배하는 사회를 걱정한 내 가치관이 작동하는 시점은 결국 ‘멀리서’라는 걸 깨달았다. 잡아 올리고픈 사탕 개수가 늘어날수록 그저 그런 범인이 된다는 것이 부지불식간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나던 갑작스러움과 다르지 않다는 걸 목도했다.
그러면 도대체 익혔다는 느낌으로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 앞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는 건 무엇일까. 글은 힘이 있을까. 익혀서 나오는 것은 도대체 뭐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뭐가 하고 싶은 걸까. 뭐 그런 잡생각들이 판을 쳐 또 속에서 중언부언하는데 노트북을 켰다. 아무 정리도 되지 않은 날 것의 단어들만 이렇게 손 가는 대로 나열됐다.
오늘은 퇴고도 없고 수정도 없다. 완전히 망했다. 어차피 완벽히 익은 것은 없으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했다. 주워 담은 걸 익히려고 갔던 곳에서 또다시 설익은 것만 잔뜩 넣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