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불능 변연계와 통제 가능 수습
2주 전이었다. 도시 고속도로에서 3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2차선에서 벤츠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3차선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뒤에 줄줄이 사탕으로 다른 차들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멈추면 추돌사고가 날 게 뻔했다.
오히려 속도를 높여 빨리 빠져나가기로 했다. 왼쪽 백미러에서 깜빡이 켠 차가 사라지는 순간 더 밟았다. 내가 빨리 지나간 뒤 뒤에서 차선 변경을 하면 된다고 계산했다. 그때였다. 왼쪽 문짝이 빠지직거리며 갈리는 소리가 났다. 접촉 사고였다.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다. 백미러를 보니 나를 긁은 벤츠도 멈췄다.
약 30초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어쨌든 친 쪽에서 다가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도 가만히 차에 있었다. 순간 화가 났다. 상황 잘잘못을 따지는 건 뒤로하고 가해 차량이 피해 차량에 다가가 운전자가 괜찮은지 묻는 것이 일반적인 도로 매너다. 그걸 상대가 하지 않아 분노가 치밀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문을 쾅 닫았다. 뒤로 성큼 성금 걸어갔다. 운전석 창문을 노크했다. 상대가 내리기는커녕 창문만 빼꼼히 열어 얼굴만 내밀었다. 더 어이가 없었다. 매너가 없으신 것 아니냐고 말하려는 찰나 상대 운전자가 아주머니인 걸 확인했다. 말문이 막혔다. 오히려 내가 먼저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갑자기 끼어드시면 제가 어떻게 서느냐고 되물었다. 상대는 내가 설 줄 알았다고 답했다.
또다시 2차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뒤에 차가 줄줄이 따라오는데 거기서 제가 갑자기 서면 추돌사고 나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차분히 말했다.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각자 보험사를 부르자고 하고 차에 돌아와 멍하니 서서 애꿎은 담배만 태웠다.
몇 분 뒤 사설 견인차가 등장했는데 나와 운전자를 보곤 그냥 돌아갔다. 외제차 2대가 나란히 서 있어서 자기들도 건드리기 싫었는지 아니면 내 표정이 썩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어딘가로 통화하며 지나갔다. 곧바로 각자의 보험사가 왔다.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서류 몇 장에 서명을 한 뒤 상대 운전자가 과실을 인정하니 차량을 원하는 곳에서 수리할 수 있게 전적으로 돕겠다는 상대 보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알겠다고 하고 찌그러진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무려 13년 무사고 운전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후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들어보니 상대 보험사는 블랙박스 확인 결과 7대 3 정도로 내게 3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보험사는 거기서 설 수가 없는 상황이므로 9대 1이나 최소 8대 2의 과실만 내게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상황이 2주가 넘도록 지지부진해 직접 내 보험사에 전화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 뒤에 가서 달라졌으며 기본 매너도 안 지키고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객관적인 블랙박스 자료랑 전부 다 검토하는 것엔 보험사간 비즈니스라 이의가 없는데 절대 그쪽 말대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며칠 뒤 보험사는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해 심의로 넘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내가 거기에도 불복한다면 민사 재판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알려줬다. 출고된 지 갓 1년 넘은 차를 그렇게 사고차로 받아들이고 2주 넘게 렌터카를 타고 다니는 데 시동 걸고 끌 때마다 분노도 같이 발동 걸렸다가 잠잠해지고 있다.
돌아봤다. 도대체 이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또 어디로 흘러갈까.
이 책 저 책 뒤져보니 뇌의 ‘변연계’라는 지극히 동물적인 것을 관장하는 곳에서 샘솟았다. 불합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정지, 도망, 싸움의 과정으로 변연계가 작동하는 데 내 상황에선 사고 발생 직후 일단정지해서 상황을 인지한 뒤 잠시 차에 멈춰 도망의 시간을 가졌다가 뒤로 튀어나간 싸움의 과정으로 번진 셈이다.
이것은 순식간에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인 이상 극복하기 힘든 수순이라고 심리학 책은 설명했다. 인간 진화에서 그렇게 발달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뇌가 멈추지 않는 이상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평범한 인간이 겪는 당연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심지어 변연계는 한 번도 작동 스위치를 멈추지 않는 지독한 놈이었다. 구태여 변명하자면 부모뻘 되는 아주머니가 운전석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다시 분노를 꺼트리고 일종의 정지 상태를 겪으며 멍하니 담배만 태웠던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흔한 말이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인간에겐 극도의 스트레스 위협이 되는 것을 꺼리는 증상이 있다. 도망치고 싶은 것도 여기서 연유하며 심지어 봤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다. 내가 2차선에서 들어오는 깜빡이를 봤는데도 내가 먼저 빠져나가면 된다는 식의 속도를 낸 것이나 저쪽 아주머니가 자기는 깜빡이를 켰으니 내 뒤차를 신경 쓰지 않고 이 정도면 됐다고 차선을 변경한 것과 같다. 이 짧은 순간에 자기 입장만 따지는 것이니 보긴 봤어도 관찰하진 못한 것이고 그 입장 차이에서 여전히 지지부진한 합의 실패에 이른 셈이다.
결국 모든 사태의 끝은 분노다. 일시정지든 도망이든 분노로 귀결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다만 그 분노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가 하는 게 이성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 대응하는 인간으로 남는가 하는 과제로 남는다. 한마디로 꾹꾹 눌러 담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소리로 들린다. 분노는 결국 무의식이 관장하는 것과 의식이 받아들이는 스트레스 수준에서 오는 데 이걸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하는 건 또다시 개인의 판단으로 남는다. 복잡다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이 또한 다른 스트레스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렌터카는 굴러다니며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이상까지도 걸린다는 심의 기간 내내 자동차 수리비며 렌트 비용은 내 카드에서 새어 나간다. 신용카드라면 질색을 하는 데 휴대폰에 쭉쭉 찍힌 금액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마음을 축축 꺼트린다.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고 하지만 또 분노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분노를 어디로 흘려낼 것인가 하는 과제만 또 남아서 이것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