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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Dec 14. 2018

고기 감사했습니다

집 앞 기업형 슈퍼마켓에 정육 코너 직원이 사라졌다. 영업 종료 직전 ‘떨이’를 사러 갔다가 뒤늦게 알았다. 오늘따라 유독 떨이 가격이 예전 같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다가 직접 고기를 잘라 주는 정육점 코너를 찾았는데 없었다.


그간 포장되어 진열된 고기 가격이 비싸면 정육점 코너 직원이 1인분으로 잘라주는 고기를 샀다. 진열된 고기보다 저렴했고 딱 한 번 먹을 수 있는 양이라 내겐 합리적 구매였다. 그런 정육점 코너와 직원을 순전히 싸게 사겠다는 내 필요성 때문에 마침 오늘 찾았고 과거의 습관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육점 코너와 직원이 사라진 건 석 달 전이었다. 이 기업형 슈퍼마켓은 그즈음 대대적인 내부 개편을 했다. 정육점 코너가 있던 자리는 더 큰 음료수 진열대가 차지했다. 음료수 진열대가 작게 있던 구석 자리는 생활용품을 저렴하게 파는 또 다른 기업형 브랜드가 입점했다. 나는 그때 내부 인테리어가 바뀐 건 한눈에 깨달았다. 생활용품 코너도 편리해서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정작 차순위로 이용했던 정육점 코너와 직원이 사라진 건 오늘에야 필요성과 내 이득에 따라 한참 후에 인지했다.


사람이 잊히고 밀린 시대라서 그걸 항상 경계하자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정작 실생활에선 다를 바 없는 부류의 인간이란 자괴감이 사라진 정육점 직원을 인식하며 밀려왔다. 모든 걸 사람 중심으로 놓고 사고하는 것이 일이든 삶이든 정답이라 믿었는데 믿음은 믿음으로 그저 속에서만 부유한 게 확인됐다. 허황된 내적 가치관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던 것이었다.


그 정육점 코너에서 일하던 직원은 어디로 갔을까. 편리함 속에 일자리를 잃은 그분은 다른 일터를 찾았을까.


“저희 고기가 회전이 빨라서 맛이 좋아요”라며 잘라주던 그 알맞은 양의 고기와 따뜻했던 말이 야심한 밤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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