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586'] 편집위원 지우
지금의 50대는 많은 인구수와 배타적 기득권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생애과정상 50대가 사회의 허리를 맡는 것은 세대를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른 세대와의 환기가 유독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의 50대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강력한 권력을 틀어쥐고 있음은 자명하다.
사회의 규칙을 설계하고 집행한다는 점에서 정당, 의회, 정부로 대표되는 제도정치의 권력이 어떻게 분배되어 있는지를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이 안에서 현재 50대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작년 총선 당선인 300명 중 무려 60%에 육박하는 177명이 50대였는데, 전체 유권자 중 50대가 20%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연령이 분명 과대대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정 세대의 정치인이 반드시 특정 세대를 잘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연령층의 여론이나 투표 성향을 볼 때에 20%와 60%의 간극은 분명 지나치다. 그렇다면 지금의 586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 과정과 결과가 왜 문제이며, 청년정치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이를 넘어서야 할까? 이번 기획은 국회의원의 분포를 중심으로 현상을 진단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이 물음들에 답하고자 한다.
진단 1 : 50대는 어떻게 집권하는가
586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포함한다. 이 세 속성은 지금 시점에서 같은 집단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둘과 달리 50대라는 속성은 시간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부여된다. 다시 말해 지금의 50대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전의 50대들은 어땠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지금 586세대의 집권이 ‘86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50대’가 된 세대 효과 때문에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닌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대 국회의원 당선인의 연령 분포를 보면, 국회 내에서 5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86세대만의 특징은 아니다. 16대 국회부터 50대는 꾸준히 전체 국회의원 연령의 40% 이상을 차지해 왔다.[1]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유독 심하긴 했지만 50대가 과대대표되는 건 시기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집권한 것이 86세대여서라기보다는 기득권으로서의 50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기를 막론하고 50대가 일반적으로 의회를 주도하는 건 남성-법조인 또는 관료-50대라는 정형화된 정계 진출 패턴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보면 판·검사·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이 46명[2], 행정고시 출신이 27명[3]이다.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고, 직업군의 특성상 특정 대학 출신에 쏠릴 수밖에 없다. 50대라는 연령은 이들이 직장에서 나름대로 훈련을 받고 사회경제적 자원을 쌓은 후에 정계로 진출하게 되는 나이이다. 결국 ‘남성-법조인·관료-50대’에 더해 SKY를 비롯한 몇몇 출신적 특성이 상호작용하면서 강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50대라는 특정 세대가 항상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패턴은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 왔고, 사실 지금의 2030도 50대가 되면 분명 의회 내 주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50대가 비대해지면 다른 세대는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윗세대의 퇴장은 정치 세력을 교체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20~40대 정치인의 수와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목소리가 대변될 만한 정치적 공간이 협소해짐을 의미한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18~39세 유권자는 전체의 34%가량이었는데, 같은 연령 국회의원 당선인의 수는 3%인 11명에 불과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3명, 즉 1%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대부분 30대 중반을 지난 사람들이었다. 기성세대가 생애과정의 특정 시기에 자연스레 획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청년층이 기형적일 정도로 과소대표되고 있다. 주요 정당들이 청년정치를 부르는 것에는 청년정치의 부재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상술한 남성 법조인·관료가 50대에 정계에 진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유권자들을 잘 대변할 역량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도 문제가 된다. 정치전략의 측면에서나, 유권자를 대표하는 정도에 비춰보나 이들이 국회의원으로서 특별히 적합한 직업적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충분한 자격을 갖춰서라기보다는 당연한 관례에 따라 정치인이 될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입법기관으로서 법에 대한 이해와 정책적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 대의기관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법조인·관료가 아닌 소위 ‘인재영입’에 의한 것이더라도 정치인으로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진단 2 : 586은 어떻게 집권했는가
하지만 586은 지금까지 정형화되어 있었던 50대의 집권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먼저 586을 이야기하기 전에, 586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짚어보자. 사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특정 세대를 평면화해서 그 특징을 재단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예컨대 당시 대학진학률이 30%대였으므로 80년대 학번이 없는 사람이 70%에 육박하며,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도 젊은 층에 비해 높고, 당연히 직업도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르다. 때문에 여기서는 60년대생이라는 특정 인구학적 코호트cohort[4] 대신, 일정한 정신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명명하기 위해 ‘세대’라는 단어를 빼고 586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대로서의 50대와 60년대생을 지칭하기보다는, ‘80년대 학번’으로서 겪었던 학생운동의 역사와 민주화 신화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말이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검사 출신인 조응천, 판사 출신인 이수진(동작을) 의원은 50대,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이지만 운동권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글에서 말하는 협의의 586은 아니다.
586은 이러한 점에서 이전까지의 법조인-관료 출신의 50대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무엇보다도 제도권 밖을 정치적 뿌리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상호, 김태년, 송영길, 윤호중, 김종민, 정청래 의원, 이인영, 유은혜 장관, 김현미 전 장관, 안희정 전 지사, 김경수 지사,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 포털 1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민주당의 50대 정치인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계 진입 전 판검사를 하거나 관료로 일하는 대신 출판업계, 학원, 시민운동 등 제도권 권력 밖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정석 루트’인 남성-법조인·관료-50대와는 다르다. 이들이 대부분 남성이긴 했지만, 법조나 관료 경험 없이도 50대가 되기 이전부터 586으로서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50대가 많은 것은 상술했듯 전형적인 현상이지만, 2000년 16대 총선부터의 연령분포를 돌아보면 N86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그들이 속한 연령대가 유난히 비대해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예컨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 중 30대는 0.4%, 40대는 16.6%에 불과한데, 586이 30대였던 2000년(16대), 2004년(17대) 총선에서는 30대가 각각 5.7%, 9.5%였고, 586이 40대였던 2004년(17대), 2008년(18대)에는 40대가 무려 34.6%, 31.0%에 달했다. 50대의 비중 자체도 586이 30~40대일 때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16~17대 총선에서는 40%를 밑돌던 50대 비중이 지금은 60%에 달한다. 특정 세대로서는 유례없이 많은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중 누가, 또 몇 명이 ‘586’인지를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 수치를 상술한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과 겹쳐 보면 이전의 50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진 세대임은 분명하다.
[5]
시계를 돌려보면, 586이 제도정치권에 본격 등장한 것은 2000년과 2004년 사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30대 11명이 당선되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9명이었다. 이 시기 386의 정치권 등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다. 노무현의 취임 당시 안희정, 이광재를 비롯해 대표적인 N86들이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건 2004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국회에 진입한 ‘탄돌이’들의 등장이었다.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경선 이전부터 당내 주류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다 임기가 시작되고 민주당 주류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자, 노무현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기존 야당인 한나라당과 여당인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상황에서 두 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소추하자, 역풍을 타고 신생 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열린우리당은 기존 여당인 민주당을 대체하기 위해 정치 신인들을 대거 영입하였는데, 정치권에서는 여기서 탄생한 초선 의원들을 탄핵 역풍과 연결지어 ‘탄돌이’라 불렀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대부분은 당시 40대 이상이었지만 80년대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젊은 386 의원들 역시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임기 초반부터 노무현에게는 ‘정신적 83학번’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대통령이 고졸임을 비꼬는 멸칭이었지만 지금의 586 정치인들의 정치적 요람으로서의 참여정부 시기를 볼 때 이 표현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요컨대 당시 386이 젊은 나이에도 제도권에 대거 진출한 데에는 탄핵 역풍이라는 외부의 정치적 기회 구조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386과 이 기회 구조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민주화운동의 공유된 경험에서 갖춰진 권력의지, 즉 권력을 잡겠다는 결심이 선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경험을 공유하던 노무현과의 친화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비록 초반에는 제도 밖에서 생성되어 제도와 충돌하며 여러 문제점을 낳긴 했지만, 어쨌든 의도한 바를 성공적으로 관철해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다. N86은 이렇게 전면에 등장해 지금에 이른다.
포스트-586, 새로운 청년정치의 가능성
유별난 과정을 거쳐 권력을 잡은 586은 제도정치권에서 이전의 40~50년대생보다 훨씬 더디게 교체될 것이다. 40~50년대생 유신 세대는 나이가 들며 자연히 퇴장하는데, 586의 후임이 될 70년대 이후 세대는 법조인 출신 중년 남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제도정치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아랫세대가 대안세력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결국 기성 권력이 유지될 수밖에 없고, 586에 대한 비난을 근거로 막연히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은 무의미할뿐더러 무력하다. 일정한 카르텔을 깨고 권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카르텔 밖의 사람들이 권력의지를 갖춰야만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던 남성-법조인·관료-50대 카르텔과 예외적 코호트인 586의 카르텔 모두 마찬가지다.
대안정치세력의 형성이 중요하다면 청년 세대가 386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정치를 통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효능감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386의 세력화를 가능케 했던 권력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2021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민주화운동처럼 강력하고 거대한 정치적 동기에서 출발해 지속가능한 권력의지를 구축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정치적 사건은 있었지만, 그 외에 경제적 여건을 비롯해 주어진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586을 닮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들의 초기자본에는 운동의 방법론적 핵심을 구성했던 상명하복식 군사문화와 성차별, 엘리트주의, 적대적 계파주의 등의 이면이 있었다. 특집의 앞선 글에 자세히 쓰인 만큼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으나, 기성세대가 된 그들은 정책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나 수구세력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후 세대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벌이는 “덜 나쁜 쓰레기 되기 게임”[6]에 발맞춰 또 다른 플레이어가 될 이유는 없다.
‘청년정치’라 이름붙은 후속세대의 정치는 이미 한참 전부터 부상하던 의제이다. 그러나 선거철 청년 표심을 잡는 전략에 지나지 않아 청년을 공천하겠다는 반짝 선언에 그치고, 정작 공천된 후보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21대 총선을 예로 들면 민주당, 미래통합당은 공천 혜택을 주는 청년의 기준을 45세로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다. 결국 청년이 제도정치 안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만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당연히 청년들은 이들이 도구적으로 호명하는 청년정치에 호응할 이유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양대 정당에서 20대 공천 신청자 자체가 매우 적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청년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 청년이 자리 잡고 선 정치관에서 출발해 보자. 20대의 정치관을 가장 평면적이고 간단하게 해석하는 방식은 그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청년층에게 돌리는 소위 ‘20대 개새끼론’[7]도 이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젊은 층인 20대가 ‘진보 세력’인 자신들을 보다 지지할 것이라는, 또는 지지해야 한다는 막연한 환상일 뿐이다. 2015년 1월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의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라는 토론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원한 청년은 23%인 반면 “붕괴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고 답한 청년은 42%에 달했다.[8] 이 조사를 놓고 보면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변화에 소극적인 기존의 정치체제와 대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투표 이외에 조직적이고 일상적인 참여의 방식은 없는데, 선택 가능한 세력은 민주당과 국민의힘뿐이고, 정권의 이동이나 투표에 따른 정치효능감 역시 떨어지니 당연한 일이다.
최태욱(2017)은 청년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동을 원한다는 위 조사를 두고 “청년정치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관심을 끌 것이냐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정치참여의 의지로 변환할 것인지이다. 사실 주요 원내정당은 그 방법으로써 이미 청년조직을 두고 있다. 원래 ‘청년위원회’와 같은 이름으로 존재하던 것이, 청년정치 활성화를 내걸고 당내정당의 형식으로 재편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전국청년당’, 국민의힘은 ‘청년의힘’, 정의당은 ‘청년정의당’을 세우는 식이다. 별개로 대학생위원회를 두거나 대학별로 학생위원회를 두는 정당도 있다. 주요 정당 외에도 30대 여성이 당대표와 국회의원을 지내는 기본소득당을 비롯해 청년활동의 제도적 장은 어느 정도 구축된 상황이다.
이런 조직들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여전히 정치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 구조가 586이나 그 이전 세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IMF를 기점으로 급속히 위축된 고용시장은 청년 개개인이 당장 먹고사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들이 생계의 리스크를 지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전업 정치 활동에 뛰어들 동기를 찾기는 어렵다. 비상한 정치적 신념이나 야망이 없으면 아무리 청년조직이라도 청년 개개인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 구조는 앞서 말한 청년정치의 수요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청년정치가 청년당사자의 생활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겠지만, 어쨌든 당면한 생활의 문제를 정치가 해결할 가능성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년정치의 가능성은, 정당이 주어진 경계선 안에서 청년조직을 꾸리는 정도로만 청년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어필하는 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어진 삶이 정치적 동기의 실마리라면 정치참여 자체의 문턱을 낮추고 생활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생활정치를 향해
생활정치 자체는 정치권에서 이미 종종 등장하던 표현이다. 하지만 생활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탓에 기성정치보다 ‘생활에 밀접한’ 정치를 의미한다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의미를 정확히 도출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정치를 그려본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패러다임일 수 있겠으나, 대안 정치로서의 생활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생활정치’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기든스가 처음 고안한 것인데, 그는 이를 범지구적 영향과 자아가 상호작용하면서 “자아현실화의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적 이슈”라고 정의한다.[9] 좌파의 기존 정치가 속박된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는 ‘해방정치’였다면, 현대의 개인에게는 그 선택의 기회가 이미 부여되었기 때문에 기존 정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생활정치는 “이제까지 체계에 구속되어 있던 개인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며 해방정치에서 계급으로, 국가정치에서 국민으로 규정되던 집단주체에서 개개의 자연인으로 되돌려 놓는 과정[10]이다.
기성정치나 586의 정치가 말 그대로 무언가를, 특히 586의 경우에는 민주화를 지상과제로 둔 해방정치를 지향했다면, 생활정치는 새로운 정치가 체계의 해방적 과제를 넘어 개인이 마주한 선택의 영역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계급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듯한 이러한 진단은 얼핏 2030이 마주한 생활의 문제를 탈색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서창훈은 생활정치가 해방정치를 단절함에도 해방정치의 과제가 모두 달성된 것은 아니므로 둘은 “계속해서 교차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11] 지금 2030세대가 마주한 문제들에 비춰보자면, 해방의 대상으로 간주되던 경쟁체제 속에서 그것과 교차하는 청년 개개인의 생활정치를 발굴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상 이미 원자화된 청년들이 정치적 행위주체로서 생애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성 정치가 덩어리로서의 청년을 호명하는 것이 지금까지 청년세대가 느끼던 정치와의 단절감을 해소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돌아보면, 청년을 유권자와 대의자의 관계에서만 보던 지금의 청년정치 담론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앞선 진단에서 언급한 국회의원 세대 대표성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대안적 청년정치가 불가능하다. ‘청년 국회의원’처럼 대의기관과 원내정당으로 표상되는 정치를 초월해 그 선결과제로 청년 개개인의 정치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를 중심으로 한 기든스의 생활정치 담론은 제도적 여건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시민성을 갖추는 데에는 제도적인 시민교육이 필요하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정부·민간 사이의 제3섹터를 통해 생활과 정치문제가 연결되는 틈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제도 역시 선택의 폭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생활정치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청소년기부터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 갖춰진 독일, 핀란드, 프랑스 등 북·서유럽 나라들과 그로부터 배출된 여러 정치지도자가 우리가 지향하는 대안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제도가 생활정치의 토대를 꾸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586이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무력한 바람이다. 운동권이라는 나름의 정치 공간 안에서 생활하며 고도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낸 586과 달리,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얕은 사회안전망 속에서 거대한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있는 청년 개개인에게는 요원한 이야기이다.
이전의 수많은 기성 권력과 지금의 586에 이르기까지, 견고해진 벽 앞에 선 청년에게 정치참여로의 길을 트지 못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20대들이 아니라 ‘20대 개새끼론’이야말로 무책임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무얼 어쩌라는 것이냐”라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년이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그리고 이 글이 무언가를 주문해야 한다면, 제안할 수 있는 건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조직과 참여뿐이다. 여전히 막연한 이야기이지만 ‘정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지금의 무한히 회의적인 현실인식으로부터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거와 투표 이상의 무언가를 매개로 정치를 인식해야 한다. 위 조사가 보여주듯 청년들이 ‘붕괴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상정하는 붕괴의 대상은 대체 무엇이고, 생활 가운데서 무엇을 어떻게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만이 우리가 생활인으로서, 또 정치의 주체로서 전망할 수 있는 대안 정치의 시작일 것이다.
편집위원 지우 / y.jwoo@daum.net
[1] 김미향, 2019.
[2] 이승윤, 2020.
[3] 임대현, 2020.
[4] “조사연구와 인구학적 연구에서, 특별한 기간 내에 출생하거나 조사하는 주제와 관련된 특성을 공유하는 대상의 집단을 말한다 (이철수, 2009, 사회복지학사전).” 즉, 여기서는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의 코호트로 묶는다.
[5] 김미향, 2019.
[6] 정주식, 2020.
[7] 여러 맥락에서 사용되나, MB정부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이 선거 패배 원인을 20대의 정치적 무관심과 사회현상에 대한 무지, 그로 인한 저조한 투표율 등으로 돌린 것을 일컫는다.
[8] 김종휘, 2015; 최태욱, 2017에서 재인용
[9] Giddens(1991); 서창훈(2009), p114에서 재인용. 이하 서구사상에서의 생활정치 논의는 서창훈의 논문을 참조하였다.
[10] 위 논문, 126. 강조는 필자.
[11] 위 논문, 124.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서창훈. (2009). 서구의 생활정치 사상과 독일의 현실. 시민사회와 NGO, 7(2), 111-149.
최태욱. (2017).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시대의 청년정치 부상 가능성.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31, 259-285.
기사 및 온라인자료
김미향. (2019. 9. 8.). 선거 때 쓰고 버리는 카드? “30대도 정치인이 되자”. 한겨레신문. Retrieved from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08857.html
이승윤. (2020. 4. 16.). (단독) '여당 압승' 속 법조인 출신 46명, 제21대 총선 당선. 법률신문. Retrieved from https://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0940
임대현. (2020. 5. 4.). 관료 출신 가장 많아…변호사·기자·검사 다수. 뉴스웨이. Retrieved from http://www.newsway.co.kr/news/view?tp=1&ud=2020042914070534789
정주식. (2020. 11. 30). 덜 나쁜 쓰레기 되기 게임. 주간경향, 1404. Retrieved from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011201423361&code=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