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편집장 은희
더 이상 어떤 글도 써 내려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에서 하는 말입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그건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소재를 뒤적거려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건대 이건 꽤 최근의 일입니다.
저는 스스로 어딘가 망가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내게서 사라진 것들을 떠올립니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진득하게 사랑하기, 온 힘을 다해 분노하고 슬퍼하기, 확신을 담아 또박또박 말하기…. 더 이상 어떤 일에도 진심을 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를 세계와 나 사이의 이물감이 대신합니다. 그러다 끝내 자신을 의심합니다. 정말 이 모든 것들을 지니고 있었기는 하냐고.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일은, 더 이상 어떤 글도 써 내려가지 못할 거라고 느낀 이번 학기에 오히려 이런저런 글들을 더 싣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쓰고 싶은’ 글을 잃어버린 제게는 ‘써야 하는’ 글들만 남았고, 오직 그 의무감 하나를 동력 삼아 글을 썼습니다.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건 오히려 쉬웠습니다. 별로 망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빨리빨리 글을 쳐내면서도 그 행위 자체에서 좌절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의무감만으로 글을 쓰는 게 맞는가? 적당히 ‘우리는 교지니까 이런 글들도 써야지’하는 마음인 것은 아닌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의심하다가도 그렇다고 순전히 내가 쓰고 싶은 글들만 쓰는 것 또한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요. 왜 하필 세계를 변혁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일까요. ‘쓴다’는 이 행위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어쭙잖게 낙관에 기대어 휘황찬란한 말들로 얼버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냉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쓴다’는 행위로부터 시작되는 무한한 연결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활자를 통해 하늘에 오른 노동자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난민과, 존재하는 것조차 불허 당하는 소수자와 선명한 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 가능성 하나면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나의 동기보다 나의 글로부터 시작되는 가능성이 더 중요하지 않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확신은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조차 무엇 하나 제대로 단언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런 저 자신을 비웃다가도, “입장을 완결지어 ‘편집실에서’의 마지막 문단으로 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1]는 말을 떠올리며 애써 스스로 위로합니다(동시에 여러분께 보내는 변명이기도 합니다).
다만 작은 기대를 남겨두겠습니다. 이 글과, 이번 호와, 이번 호를 읽을 여러분과, 앞으로의 고대문화가 만들어 낼 연결에 대한 기대를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로 이 작은 기대감에서 시작하게 될 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편집장 은희 | a0520choi@naver.com
[1] 해진 (2023). 2.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해진 (2023). 편집실에서. 고대문화, 151호,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