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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는 일에 대하여

[부고] 편집위원 민철

2021년 1월 4일 오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했다. 반납할 책이 있었던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정문 한 켠에 오래 서 있었다. 잠깐 괜찮다 싶더니 이내 심장 먼 곳부터 빠르게 저려오기 시작했다. 무서운 추위였다. 그것만 빼면 다 좋았다. 정문 건너편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서두르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겠지. 겨울의 태양은 버틸 힘이 없다는 듯 빠르게 지고 있었으며, 이윽고 밤을 불러올 분홍빛 어둠이 그 반대편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마 당신도 매일 저녁 이 풍경을 보았으리라.


이날 오전 결국 정문을 지키던 당신께서 돌아가셨다. 교통사고였다. 사고를 낸 차는 당신을 치고도 조금 더 달려 애꿎은 화분을 부수더니 그제서야 멈췄다. 성탄 다음날이었고, 당신의 정년이 이틀 남은 날이었다. 나는 괜히 깊게 파인 연석과 사라진 화분의 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비가 오던 날 그곳을 다시 찾았다. 사고의 경위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했다. 그러나 얘기하는 것을 꺼리며 연신 죄송하다고 아쉬운 미소를 짓는, 당신의 부하직원이었을 그를 더 보챌 수 없어 준비해 간 피로회복제 한 박스만을 건네고 돌아섰다. ‘곽영천’ 이름 석 자와 “좋으신 분, 우리 소장님”만을 겨우 듣고 수첩에 적어 두었다.


그곳은 이제 말끔히 치워졌다. 그리고 직원 채용 시스템에는 정문 근무직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금방 직원이 뽑힐 것이고, 새로운 누군가가 계속해서 정문을 지킬 것이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또 흘러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떠나보내는 데 그만 익숙해졌으면 한다. 그 무엇이라도 떠나는 것이 있다면 눈물로 잡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떠나는 그들의 손목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 잠깐이라도 기억할 수는 있게. 곽영천, 그가 여기에 서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우리의 문 앞을 지키며, 서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위원 민철 / a4003413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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