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민철
느지막이 가을을 보내며 오래 앓았습니다. 모두가 병든 이 시기에 개인의 아픔은 너무나 작은 것이라서, 저는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홀로 누워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고열은 매번 저녁에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이가 사다 둔 해열제를 먹으면 잠시나마 열은 떨어졌지만, 약이 제 역할을 다하고 열이 다시 오르기 직전의 잠깐 동안에는 꼭 지독한 오한이 찾아왔습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온몸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떠는 동안, 제가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저의 유언이었습니다. 사랑했고,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따위의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에 제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살고 싶다’ 였습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오한이 지나가고 다시 제 몸에 뭉근히 열이 오를 때(그 순간은 오히려 평화롭기까지 했는데), 결국 모든 죽어간 자의 유언은 ‘살고 싶다’의 다양한 변주이며, 나는 나의 끝을 떠올리는 그 순간까지 솔직하지 못했다고, 열에 취해 되뇌었습니다.
이곳 고대문화도 그 끝을 생각하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고대문화를 떠난 현정과 저는 폐간사를 써 두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웃으며 주고받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웃음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둘밖에 없었을 뿐더러, 약한 것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저는 저의 폐간사에 근사한 시를 인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 또한 다 허위라는 것을 압니다. 결국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살고 싶어’ 내지 ‘쓰고 싶어’, 아니 ‘써야만 해’ 그 사이 어디쯤 있었겠지요.
다행히 그 뒤로 고마운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주어 우리는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서러운 시간들을 이제 와 되짚는 까닭은, 제가 지금 교양관 앞에서 쓸쓸히 첫눈 같은 것을 맞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대문화에서 보낼 마지막 한 달가량을 그리며 그 안에서 보냈던 세 학기를 떠올립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물론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저는 그 고민이 비단 순수하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창밖으로는 미래관으로 노을이 비치고, 따듯한 차가 끓는, 이 안온한 공간에서 저는 썼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처음의 간절함과 긴장감은 모두 잊은 채, 그저 끝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대로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안일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추위를 피해 들른 학생회관 옆의 작은 카페에서 평생 오빠를 찾아다니던 한 노파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1] 그는 모두가 포기하라던 그때에도 오빠의 연약한 흔적을 계속해서 찾아 나섰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파의 끈질김, 집요함 같은 것들을 의아해할 때, 소설은 문득 노파의 딸이 키우던 두 마리의 앵무새 ‘아마’와 ‘아미’를 비춥니다. 그리고 앵무새 아미는 노파의 집을 끊임없이 날아다닙니다.
아마와 아미, 만약 이 둘을 서툰 선으로 이어본다면, 그 끝에는 ‘이미’가 있을 것입니다. 노파가 ‘아마’ 오빠가 살아있으리라는 대책 없는 낙관을 했더라면, 혹은 ‘이미’ 오빠가 죽었으리라고 비관했더라면, 노파의 긴 여정은 금세 끝이 났을 것입니다. 낙관은 언제나 실망을, 비관은 언제나 절망을 불러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는 낙관과 비관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평생을 분투하며 날아다닐 수 있었겠지요. ‘아미’처럼 말입니다.
아마, 이미 그리고 아미. 이처럼 점 하나를 가지고 세계의 갈등을 드러내는 일은 시인의 것이겠지만, 낙관과 비관 사이의 매몰찬 바다에서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일은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고백합니다. 나는 지난 세 학기 동안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마냥 잘 될 것이라며자신을 속였노라고. 지금까지 걸어온 미약한 걸음들을 가지고 스스로 위로했노라고. 여기까지 적고 나니 비로소 단 한 가지가 뚜렷해집니다. 낙관과 비관, 그 어느 곳이든 정착하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완전히 끝이라고. 이제서야 저는 빈약하나마 거짓 없는 폐간사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쓰지 않게 된 폐간사이면서 편집장으로서의 제 마지막 인사이기도 합니다. 다른 편집장들은 이 공적인 지면에 쉽사리 사적인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였으나, 저는 도무지 그러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이 한 마디를 꼭 남기고 싶습니다.
언젠가 고대문화의 마지막 책장이 덮여도 우리는 먼 곳을 바라보며 날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비바람 몰아치는 곳에서 우리가 다시 조우할 때에, 나와 당신들 모두가 날개가 지쳐 몸은 부르르 떨더라도 눈만은 형형하게 먼바다를 바라보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 그간의 비행을 단숨에 이해할 것이며, 언젠가 안주의 유혹이 우리를 덮쳐오더라도 그 눈빛을 기억하며 끝내 퍼덕이리라고 믿습니다. 아마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 저는 이미 이곳을 떠나 있겠지만, 저와 당신이 그곳에서 만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살고 싶다는 말만큼이나 진심입니다. 그럼 안녕.
편집실에서. 민철 드림.
편집장 민철 / a40034136@gmail.com
[1]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