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내린다, 실은 진을 뺀다

by 이지완

《커피 1》


뜨거운 물이

가루가 된 제 몸을

훑고 핥을 때

커피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맺히게 해준

열대의 나무 바람 태양

농부의 손길


내가 스쳐온 인연 떠올리듯

커피의 회한도 진할까




《커피 2》


가을 바람에게서 주문 받아

커피를 내렸는데

네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내가 마시고 말았다

토라졌는지 바람이 더 차갑다




《커피 3》


넌 너무 곱게 갈린 커피 같아

숨이 막혀

물이 안 빠져

정말 곱구나, 가뿐 숨으로

감탄하게 되지


커피나 사람이나 똑같다

고울수록 숨 막히는 것




《커피 4》


내린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진을 뺀다


한시도 가만두지 않고 들들 볶고

가루가 되도록 네 몸뚱이를 갈아

뜨거운 물줄기 흘려 욕보인다


너의 가장 나종된 것

그 맛과 향마저 빼앗는 과정

모질어 미안하지만 고맙다

잘 마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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