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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Jul 09. 2024

적산가옥

잔재를 대하는 방식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반일감정이 매우 컸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이유였죠. 이는 소비 행태로도 이어져 No Japan 신드롬이 생겼습니다. 도요다와 닛산 차는 눈치를 보며 몰아야 했고, 유니클로와 아사히 맥주는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현상도 한순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여행도 자주 가고 제품도 많이 사요. 또 그즈음, 우리나라 대통령이 평양의 체육관에서 환호와 갈채를 받고, 북쪽 고위인사들이 평창에 초대돼 올림픽을 구경했더랬죠. 레드벨벳이 인민들에게 '빨간맛'을 들려줬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서로 매운맛을 보여주마면서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대하는 방식


스메끼리, 바께스, 요지,  시아시, 아다마, 쪼리, 와르바시, 이빠이, 사쿠라, 빠가야로 등 일본어를 쓰면 혼났습니다. 저 어렸을 때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孱財)라며 꺼려했죠. 지금은 어떤가요? 젊은 직원들과 얘기해 보면 이런 낱말을 아예 모르더군요. 조심하고 순화할 이유조차 없어진 겁니다.


동시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까지 사라진 건 아닐까 살짝 우려도 됩니다. 전체주의와 침략성의 습성은 언제나 걱정되죠(이는 중국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민족을 오랫동안 괴롭힌 슬픈 역사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말을 가르치면서 이건 쓰면 안됨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상한 게 있어요.  일본말은 터부시 하면서 일본의 집은 귀하게 치는 거예요? 이른바 적산가옥인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많아요. 군산이나 보성 등은 여행지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왜 일본의 말은 못 쓰게 하면서 일본의 건물은 숭앙하는 걸까요?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敵産家屋이더군요. 말 그대로 적국(일본)의 재산이 되는 집입니다. 이름에도 반감이 가득한데 대단한 유산인 것처럼 떠받드는 이유는 뭘까요?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말은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연상시키지만 집은 추억을 돋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는 아픔이 없고 말에는 좋은 추억이 없을까 싶네요.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문민정부라고 자칭하면서 군부정치의 잔재를 척결했는데 영화 '서울의 봄'이 소환한 하나회를 척결했더랬지요. 일제의 잔재도 없앴는데 바로 조선총독부 건물(당시 중앙청)입니다. 대표적인 적산가옥이었죠.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의 일입니다. 당시 찬반양론의 대립이 뜨거웠습니다. 없애서 민족의 정기를 회복해야 한다 vs 남겨서 아픔의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vs 역사의식은 모르겠고 비용을 아끼자


철거 전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했다고 해요. 향수를 느꼈는가 봅니다. 고향도 아닌데 말이죠. 침략으로 세운 식민지에서도 추억은 돋는가 봅니다.


수백 억원을 들여 철거한 경복궁 앞 옛 조선총독부 건물

5년 전쯤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국회의원 손혜원 씨가 군산의 적산가옥 단지 개발에 이권 개입했다는 논란이었죠. 그때도 의아했습니다. 왜 건물만큼은 일본인이 일본식으로 짓고 살았고 일했던 곳을 기념하는지.. 이권 개입은 모르겠고 국민의 대표가 이래도 되는지 싶었습니다. 그것도 반성 없는 일본을 규탄한다는 정당에서 말이죠.


역사의 쓸모, 잔재의 교훈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매우 싫어했던 과목이었습니다. 암기할 것이 많고 쓸모는 없어 보였어요. 문, 사, 철  인문학이 대개 그렇듯이 무용無用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죠.


역사 강사인 큰별 최태성 선생이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썼죠. 역사에서 만나는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환기시켜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메타인지, 메타감지의 재료죠. 일본말(정확히는 우리말에 섞어 쓰는 일본 일상어)을 터부시 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돌아봄으로써 침략의 만행을 성찰하고 경계하는...



적산가옥을 다 때려 부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전에 한 번쯤 성찰해 보자는 것입니다. 저 집터를 헐값에 빼앗겨 쫓겨난 가족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건물들이 지어질 때 집문서를 팔아 독립자금을 댄 사람들이 있었고요. 집 안에 수탈한 곡식, 돈, 특산물이 쌓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적산가옥의 근대문화유산 지정에 반대하지 않는 것 같아 청개구리의 심정으로 딴지 한 번 걸었습니다.


P.S 이 글 발행 전에 맞춤법 검사를 하니 일본어 낱말들이 우수수 걸리네요. 손톱깎기, 벚꽃, 양동이, 젓가락으로 바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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