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호치민 여행은 핑계고(1)

: 리듬을 (맞)춰줘요

by 콩딘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데이식스 10주년 콘서트를 보고 데이식스에 제대로 입덕했다. 입덕한 시기가 10주년이라 그런지 떡밥이 많았는데, 마침 해외투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자리가 남아있던 호치민 공연을 예매했다. 내가 콘서트를 보러 해외에 가게 되다니. 예매를 하고도 한동안 실감이 안 났다. 내가 진짜 호치민을 간다고? 그것도 데이식스 콘서트를 보러? 처음 계획으로는 데이식스 콘서트가 있는 토요일 새벽 비행기로 가서 일요일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데이식스의, 데이식스를 위한, 데이식스에 의한 일정이어서 여행이라는 느낌도 덜 들었는데, 다행히 일하는 일정을 조정해서 콘서트 전후로 이틀 정도 여유시간이 생겼다.


대망의 여행 날. 전날 밤까지 짐을 싼 여파로,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타서 내내 잠만 자다 기내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허기진 상태로 베트남 땅을 밟았다. 훅 끼쳐오는 뜨끈한 공기에 야자수, 귓가에 들리는 알 수 없는 언어. 비몽사몽하다 그제야 여기가 외국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호텔까지 가는 택시 창문 밖으로 오토바이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베트남은 역시 오토바이가 많네. 이런 가벼운 감상은 시원하고 안락한 택시 안에서나 가능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나오자마자 마주한 도로 위 풍경은 지극히 날 것의 현실이었다. 저 오토바이와 차들을 뚫고 어떻게 반대쪽으로 건너가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외국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의외의 장소는 바로 횡단보도(혹은 도로)다. 어딜 가든 횡단보도를 거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나라의 리듬을 가장 먼저 익히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살아온 한국의 경우, 차량이 대체로 신호를 잘 지키지만 보행자를 배려하기 보단 얼른 먼저 가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덩달아 횡단보도에서 발걸음을 빨리하게 된다. 여행으로 가 본 영국, 노르웨이 등의 유럽 국가는 보행 신호가 빨간불이어도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으면 저 멀리서부터 차가 멈추고 보행자 먼저 가게 해주는 배려가 있어서, 이 문화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차에 치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럼, 호치민은 어떤가. 여기는 또 새로운 세상이었다.


일단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근데 신기하게 그 안에 자신만의 질서(?)가 있다. 신호등이 있어도 그렇게 잘 지켜지는 느낌도 아니다.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베트남 여행을 가면 걸어야 한다고 오히려 뛰면 차들이 못 피해 가서 위험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 그 글을 봤을 땐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현지에서 도로를 마주하고 나니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 차는 씽씽 다녀도, 행인 중 그 누구도 뛰지 않는다. 나는 걸어갈 테니 너희들(차, 오토바이)이 알아서 피해 가. 이게 호치민의 기본 리듬이었다.


처음에는 ‘진짜 이게 맞아?’ 하면서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앞서 가는 사람들을 따라 건넜는데, 하루이틀 지나니 서서히 그 리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속으로는 ‘아씨, 이러다 치이는 거 아냐?’ 싶었지만, 겉으로는 배짱 있게 느긋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신호도 없이 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를 건넜다. 그러다 도로 한 가운데 갇히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갇혀있었으니까. 차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한국 사람으로서) 말도 안 되는 이 도로 상황에 나도 모르는 새 적응하고 나니, 오히려 이상하게 가끔은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일 때, 빨리 가고 싶어서 바퀴를 동동 거리는 차를 보며 절로 뛰게 되는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횡단보도를 언제 건너든 뛰지 않아도 됐다. 물론 옆으로 차들이 쌩쌩 달려서 정신이 없긴 했지만, 호치민에 사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리듬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도로를 건너는 건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자아를 조금 벗어두고 베트남의 느긋함을 조금이나마 체화할 수 있던 건 이곳의 보행 리듬 덕분이었다. 느긋하게 살자. 차가 달리는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호치민 사람들처럼.



IMG_5263.jpg 공항 밖 풍경


IMG_5262.jpg 호치민의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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