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유튜브 하는 공대생이다.

공대생, 유튜버가 되다

by 콩돌이프로덕션

우리는 유튜브를 하는 공대생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거나, 존재할 것 같은데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 보는 사람은 천 명 남짓 된다. 영상 한 편을 만드는데 재료비로 평균 10 만원이 들고, 광고 수입으로는 한 편당 천 원 정도를 번다.


<인간극장 다음 편 예고>가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공대생 세 명의 이야기이다. 컴퓨터공학, 신소재공학, 항공우주공학. 사람들은 우리를 취업 깡패라고 부르지만 필자는 지금도 시급 100 원을 벌며 글을 쓰고 있다. (사실 그 100 원도 아직 못 받았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100 만원이 아니다.)


아, 우리는 어쩌다 이 험난한 미디어 크리에이터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가!


thumbnail.png 예를 들자면 이런걸 만든다. 이거 만들 시간에 비트코인을 했다면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자.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공대생 '철이'(필자)와 '바퀴'는 다른 한 명의 팀원과 함께 우연히 공모전을 나가게 된다. 사실 공모전은 공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품 브랜드의 새 상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 명 모두 공모전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설렌 나머지, 어떻게든 1등을 따서 꼭 소고기를 사 먹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발표자료를 만들고, 마침내 샤X이나 루이XX도 울고 갈 기똥찬 상표를 생각해낸다. 그러나 입상자 명단에는 우리보다 훨씬 촌스러워 보이는 공모작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우리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연에 빠진 두 명의 공대생은 밤새 술을 주고받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바퀴가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바퀴: "어떻게 우리같이 훌륭한 작품을 상 하나 안 줄 수 있지? 그냥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주일 후 공모전 주최 측이 진짜로 망해버렸다. 괜히 미안해지게끔...)


철이: "역시 힘이 있으려면 유명해져야 돼. 난 코딩 방송이라도 할까 봐!"

(당시 필자는 코딩 쇼를 하며 별풍선을 받는 모습을 꿈꾸고 있었다.)


바퀴: "뭐? 코딩 방송? 참 많이도 보겠다."

(그리고 머지않아 미국에서 코딩 방송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나쁜 녀석...)


"차라리 우리 둘 다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으니까 뭔가 만드는 방송을 해 보는 거 어때?



다음 날 지독한 숙취에 잠에서 깼을 때 우리는 유튜버가 되어있었다.

나름 구독자도 두 명이나 생겼다. "바퀴"와 "철이".

아, 여러분. 술에 취했다면 이상한 소리 말고 최대한 일찍 자기 바란다...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린 지독하게 말을 못하는 공대생이었다. 저 어색한 표정을 보라!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면 많은 고민에 빠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영상은 얼마나 자주 찍어야 하나?
어떤 내용을 다뤄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구독자는 어떻게 모으지?
배경음악은 어떻게 구하지?
광고수익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만약 여러분이 유튜버를 꿈꾸고 있다면 답변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앞으로 다른 글에서 천천히 다루려 한다. 그전에 우리가 왜 유튜버가 되었는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공대"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체크무늬 셔츠? 압도적인 성비? 필자는 공대에 입학할 때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페이스북 부럽지 않은 스타트업을 차리고 싶었고, 돈을 모아서 아이언맨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필자는 허언증에 걸린 게 아니다. 진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sticker sticker

(새내기 공대생 철이)


그렇게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첫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간 날, 교수님께서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컴퓨터공학과는 코딩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 띠용?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공학과에서 코딩을 안 하다니? 이건 마치 학교 선생님이 "수능 대비는 입시학원 가서 하렴!" 하는 격 아닌가!


아참, 독자분들을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컴퓨터공학(Computer Science and Engineering)에서 배우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컴퓨터공학에서는 "컴퓨터"와 관련된 전반적인 기술을 다루는데, 예를 들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윈도우즈 같은 운영체제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복잡한 문제를 컴퓨터로 신속하게 계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즉, 이론적으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 직접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걸 다 이해할 만큼 머리가 좋다면 그런 이상한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코딩을 많이 사용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코딩이 컴퓨터공학의 전부는 아니다.


6433399_700b.jpg 컴퓨터공학의_이상과_현실.jpg (출처: 9GAG)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을 꿈꾸며 컴퓨터공학과에 온 필자에게 교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들렸다.

"어이 새내기, '개발' 하고 싶어서 왔어? 번지수 잘못 찾아왔네~"


그 뒤로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매일이 과제와 밤샘,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아마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리라. 왜 배우는지 명쾌한 이유를 알기 힘든 전공 수업들 속에서 필자는 점차 흥미를 잃어갔고, 결국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스타트업을 차렸다. 동아리에서 알게 된 선배들과 함께 '매일냠냠'이라는 목표 달성 앱을 기획했다. 필자는 앱을 개발할 줄 몰랐지만 두 달간의 독학 끝에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다시 태어났다. (놀랍게도 보통 공학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밤을 새우면 해결된다.)


앱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안드로이드 개발을 공부하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외주를 시작했다. 여러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웹과 리눅스 개발도 하게 되었다. 통장에는 돈이 들어오고 뇌에는 지식과 경험이 쌓였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캡처.PNG 필자의 외주 라이프를 열어준 앱, 매일냠냠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필자는 문득 외주라는 것에 강한 피로를 느꼈다. 학부생 수준에서 개발할 수 있는 수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배우는 지식도 있었지만 학교의 커리큘럼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개발을 익히자 학문의 깊이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외주 개발은 그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결과물은 클라이언트에게 넘겨졌고, 필자는 마치 자식을 떠나보낸 듯 다시 외로운 공대생이 되었다.


이제는 남이 시켜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가 정말로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공학자를 꿈꾸던 때,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되뇌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 필자는 복학을 하고, 또다시 휴학을 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공대생, 바퀴를 만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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