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버둥 치는 순애

노을 밑의 그림자

by 콩두부
종이에 색연필 2025



여름의 것과 다른 열매들이 조용하게 무르익고 있던 날이었다.
노란 호박꽃들과 덩굴 사이로 아이들의 작은 손과 늙은 이들의 손이 번갈아가며 바삐 움직였다. 어린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호박밭과 밭에 피어난 호발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언덕에 위치한 분홍빛 건물에 5번째 창문에서 누군가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빛 머리 사이로 흰머리들, 조금 깊게 파인 눈가와 입가의 주름들 위로 옅은 미소가 퍼졌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지만 아기의 옷들이나 신발 같은 것들이 집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드라운 아기의 신발이나 장갑을 볼 때면 아주 깊은 슬픔이 무거운 추가 되어 폐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성인들을 가르치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오후 5시쯤 수업을 받으러 오는 젊은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로는 켜져 있었지만 바닥은 차가웠기에 수업을 받는 학생을 위해 얼마 전 구매한 원형 러그를 깔았다. 곧이어 젊은 여자는 얇은 갈색 머플러를 푸르며 들어왔다. 반쯤 열린 가방 위로 급히 구겨 넣었을 악보가 보였다. 그녀는 곧 생일이 다가오는 남편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젊고 밝은 여자였는데 종종 악보를 한 장씩 잊어버리고 오는 탓에 수업 중간에 집에 다녀오고는 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긴 피아노 의자에 앉아 악보를 두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젊은 여자가 말했다.


"오늘은 악보를 다 가져왔어요 선생님, 그리고......"
여자는 의자 옆에 둔 가방에서 작고 네모난 선물박스를 건넸다. 선물 상자에는 털실로 만들어진 헤어핀이 담겨있었다. 노란 호박꽃색을 띤 색이었다.
"선생님의 은빛 머리색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두 사람은 머리핀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다시 악보를 보았다. 하얀 건반 위로 두 사람의 손이 올라갔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 밑으로, 건반 위로 그림자가 가을 나비처럼 움직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