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익숙해졌는데
어느 새 입사 4개월차를 넘었다. 절대로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나도 만 3개월을 찍기 무섭게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손에 익었고 요청하고 요청받는 요청도 생겼다. 그랬더니 익숙해졌다고 레슨런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익숙해지기 무섭게 의도치 않게 다른 팀으로 전배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전배라니. 너무나 아쉬웠다. 딱 한 분기만 뒤에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면 나는 너무나 기쁘게 예스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었다. 이제야 이 팀에 익숙해졌고 내 페이지에 이미 애정이 생길 대로 생긴 후였다. 맡은 페이지를 더 잘 키우고 싶었고 더 많은 비즈니스 효과를 낼 수 있을 방법이 머릿속에 이미 잔뜩이었다. 2분기를 위해서 1분기 동안 밑바닥을 다져온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막 시작한 2분기에 할 일은 명확하고도 뚜렷했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다고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하지만 큰 회사에서 어디 현실이 내 마음대로 되던가, 나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전배 일정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정에 여유가 있다는 점이랄까.
그런데 막상 전배가 결정되고 나니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분기에도 개발리소스가 굉장히 모자란 편이었지만 이번 분기는 더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배를 팀원들에게 알릴 때쯤 2분기에 내 페이지를 담당해주시기로 했던 개발자분까지 퇴사가 결정되면서 개발을 할 수 있는 일손이 없었다. 전배가기 이전 마지막 2주는 입사한 이래로 가장 한가했다. 1-pager를 잔뜩 써서 쌓아두어도 개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최대한 개발할 일이 적도록 요건을 더 다듬고 수정하고 데이터를 더 보는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 없는 PO는 손발 다 잘린 셈이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속은 너무나도 답답한 와중에 일은 널널하니 시간은 휘리릭 흘러가버렸다. 중간에 휴가도 내가 국내여행도 다녀온 후 여유롭게 새로운 팀으로 갔다.
이 팀은 전사에서 가장 바쁘다고 소문이 난 팀이었다. 외부채용을 진행하다가 사람을 뽑지 못해 내부채용으로 돌려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나 말고도 곧 들어오는 팀원이 한 분 계신다. 들어오기 전에 각오를 하고 들어왔다. 새로운 입사의 시작이구나 하며. 그런데 웬걸, 이미 한 번 그래도 경험했다고 두 번째 팀에 적응하는 일은 첫 팀에 적응할 때보다는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너무 일이 바빠서 나에게 신경써줄 겨를이 없고 내가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뭘 해야 할지가 정해져있지 않으니 찾아볼 수 있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자잘한 운영업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이미 3주, 나도 모르게 새로운 팀에 서서히 적응이 된 것 같다.
이전 팀은 딱 하나의 내 도메인을 맡아서 그 도메인에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보니 지표를 위해 수 많은 고민이 필요했고 AB테스트를 지속적으로 보고 지표를 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여기는 큰 프로젝트를 런칭하는 팀이다보니, 대형오픈을 앞두고 project managing같은 일들이 많았다. 그 대신 수 많은 부서들과 협업하고 얘기하며 문제가 생겼는 지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전 팀에서는 조금 꼼꼼하지 못해도 볼드한 의사결정이 크게 필요했다면 여기서는 볼드한 의사결정보다도 오픈을 하기 위해 놓치는 부분이 없는 지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오픈 막바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메인이 다르니 시야도 달라진다. 이전 팀에서는 명확한 내 도메인에서의 지표가 중요했기 때문에 내 페이지에만 빠삭하게 알았었는데, 지금은 서비스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앞단부터 뒷단까지, 그리고 각종 서비스들까지. 이번에는 decision support 부분들을 주로 진행하고 있는데, 하나씩 조금씩 내가 own 하기 시작하는 것이 나름의 기분이 좋은 포인트다. 아무래도 아직은 단순작업이 많아서 이전 팀의 일처럼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것은 항상 재미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end-to-end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팀의 장점이다.
그런데 이전에 입사할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알아야만 안심이 되어서 하나하나 다 찾아봤었는데 이 팀에서는 그래도 짬이 조금 생겼다고 대강 알게되면 넘기는 경향이 있다.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스스로 알아보는 습관을 다시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항상 궁금한 건 더 고민하고 물어보자.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의아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말고 조금만 더 생각하자! 새로운 곳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민할수록 내것이 되고, 무엇보다 이 곳은 물어보고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널렸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기회를 잘 활용하자!
이제야 올리는 5월에 썼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