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일한 것
테드 강연에서 임종을 앞둔 분이 나와서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너무 많이 일한 것. 안 그래도 요즘 일에서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였기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트리거가 되었다.
여기서 "일을 많이 한다"의 정의를 쪼개어 볼 필요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할 때 집중해서 일하는 것은 여전히 바람직하다. 문제는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않을 때다("못"이 아니라 "않"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일이 끝난 후에도 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오버타임을 하는 것.
이미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야 하는데 거기에 시간을 더해서 일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모든 업무시간에 초집중하는 것도 아니지만 정시에 퇴근하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는 병이 있다. 어느새 오버타임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야말로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한 때는 초과근무가 마법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이직한 지 1년이 될 때 즈음까지는, 남들보다 아는 것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것 같은 그때, 초과근무를 하면 그 갭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었다. 시간을 조금 더 쓸 뿐인데 나의 모자람이 메꿔진다는 사실이 마법 같았고 심지어 감사했다. 나의 치트키 같았달까. 그렇지만 이게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버렸다. 할 일이 뭔지 명확하게 보이는데도 안 하고 컴퓨터를 끄면 꿈에서도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고 한 밤이 다 되어서 퇴근하면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렸다.
삶의 질이 급속도로 하락하는 걸 느꼈다. 이직을 하고 일 년을 열심히 살았지만, 역시 나는 여유와 작은 정성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봄이면 쑥을 캐고 바지락을 사다 쑥전을 해 먹고 때가 되면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을 가고, 매일같이 운동을 하는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주말 낮에 놀러 온 친구와 거실에 앉아 얘기를 하는데 볕이 너무 좋게 들어왔다. 친구가 이런 볕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요즘 이렇게 볕이 잘 들어오는 지도 그날 알았다. 매일 방 한구석에 박혀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모니터 밖에 있다. 운동을 하고 볕을 쐬고 친구를 만나고 계절밥상을 차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나다. 이 테드 강연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습관적인 야근은 선택의 문제고 나는 그 옵션을 고르지 않을 것이다.
무작정 칼같이 노트북을 닫는 것은 지금 회사에서 불가능하다. 다만 오전에 집중하도록 패턴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나는 오전에는 집중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오전에 느긋하게 하다가 오후에 회의와 일에 치여 야근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야근을 하고 오전에는 피곤함에 효율이 나지 않는 악순환인 것이다. 그 대신 아침에 빡세게 집중해서 집중해서 해야 할 문서작성이나 딥다이브를 해치우고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삶을 살 것이다. 저녁 늦게 오는 슬랙이나 이메일에 답장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