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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Apr 01. 2023

#0. K직장인의 알로하 프로젝트

나는 다음 달 하와이로 한 달 살기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재작년만 해도 앞으로 내 인생에 장기 여행은 육아휴직을 써야만 떠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겠지만 반쯤 스타트업 같은 IT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이직 후 일 년 간 죽어라 일한 후 드디어 적응한 후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비교적 큰 책임이 동반되는 비교적 큰 자유였다. 줄야근을 할 만큼 힘든 업무환경이지만 100% 재택을 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시간적, 정신적 자유는 회사에 내어준 대신 공간적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 창으로 들어오는 볕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언제 봄이 와서 패딩을 벗을 계절이 되었는지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새 봄은 무르익어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기업들은 하나둘씩 재택을 줄이고 있었다. 언젠가는 회사든 나든 둘 중 하나는 마음이 바뀌어 이 기회가 날아갈 터였다.


일을 마치고 지친 정신으로 누워 유튜브를 보던 날, 알고리즘은 나를 세계여행하는 30대 부부의 채널로 이끌었다. 그들은 벌써 3년째 유랑 중이었고 치앙마이에서 한 달간 지낼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날씨는 끝내줬고 그들은 햇살 내리쬐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대학가로 가 곱창을 먹었다. 디지털노매드의 도시답게 카페에는 노트북 하나만 든 평화로운 표정의 외국인들이 곳곳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문득 헬스장 거울 속에서 바라본 내 표정이 떠올랐다. 입꼬리 턱 밑까지 내려간 나이 들어 보이던 한 여자. 누구보다 무심한 표정으로 휘적휘적 기계를 흔들던 그녀.

유튜브 영상 속 여유로운 외국인들의 표정과 정반대다. 따지고 보면 그들과 나는 다른 점이라면 단 하나,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언제든지 일터를 옮길 수 있지만 나는 마음이 프로젝트와 숫자를 생각하기에 바빴고 그들의 마음은 햇살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끝나지 않은 일은 내일로 미룬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갔고 생각보다 비행기 값이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100만원 미만으로 무난히 치앙마이에 도칙할 수 있었다. 숙소도 비행기도 어느 정도 비용 윤곽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결심했다. 나는 해외 한 달 살이를 할 거다. 그것도 날씨가 끝내주는 곳에서 아주 기억에 남는 한 달 살이를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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