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배낭을 메고 때론 친구와 때론 혼자 인도 동남아 남미 등을 여행했었다. 돈이 없었지만 시간이 많았으니까 스카이스캐너를 뒤지고 뒤져 가장 싼 티켓을 찾아 저가항공에 몸을 욱여넣고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스탑오버를 했다. 덤터기 쓰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흥정하고 공용 화장실에서 씻었다. 타본 적도 없는 스쿠터를 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돌아오기도 했다. 더운 공기와 매캐한 매연냄새와 크고 하얀 눈동자들이 아득한 그런 여행이었다.
이 시기의 여행이란 설렘 그 자체였다. 타고난 성향이 P인지라 그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에 머무를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는 것 자체도 즐거웠다. 때때로 맞닥뜨리는 돌발상황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었고 마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즐길 여유가 있었으니 준비를 덜 해도 얻는 재미가 많았다.
여행물을 조금 먹자 여행이란 자고로 계획하지 않고 가는 것이 즐거움이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굳었다. 남들 다 가는 관광지는 의도적으로 피했고 잘 알아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과 예상치 못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기대했다. 어느 때는 예기치 못한 일로 즐거운 기억이 되었던 반면 어떤 때는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직장인이 된 후로는 예기치 못한 즐거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변수는 우연의 즐거움이 아닌 불쾌함으로 변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잘 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움을 빙자한 귀찮음으로 여행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았었다. 숙소와 비행기만 예약해 두고 떠난 여행지에서 그냥 하릴없이 거닐다 그저 그런 음식을 먹고 끝나는 날들이 많았다. 흥정하기 피곤해서 돈을 더 내고, 적당히 유명한 곳만 찍고 숙소에서 쉬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일상에 대한 보상심리에 여행의 의미가 있는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동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은 장소만 옮기는 것이 다는 아니었다. 내가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비로소 여행이 된다. 변수란 곧 새로움이고, 새로움에 열린 마음이야말로 여행자의 마음이다. 다만 나는 이 사실을 회사 앞 나무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회사 앞에서 있는 지도 몰랐던 나무가 청량한 푸르름이 넘치는 덧을 발견한 순간 그 점심시간은 내게 여행과 같았다. 매일같이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문득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온 나무를 보며 새삼스레 감격스럽고 새로웠다. 그 나무를 바라본 시선이 변수였다. 어떤 상황이든 여행자의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게 여행이었다.
이번의 여행은 나무를 보는 것 같은 마음으로 채우고 싶다. 하와이의 뜨거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고 갑작스레 닥칠 우연에 마음을 활짝 열 것이다. 우연히 만난 밥집에 호들갑을 떨고 나뭇이파리에 설레어해야지. 온 마음으로 하와이를 받아들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