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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Aug 20. 2023

언어의 힘 - 언어가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공구다”라는 경상도말이 있다. 예를 들어서 강아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못하도록 둘러싸고 막아라,라고 말을 할 때 공가라(공구어라) 라고 말을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괴다”의 경상도 방언이라 나오지만 괴다와 확실히 다른 의미가 있다. 괴다는 움직이는 생물체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공구다는 말은 보통은 움직이는 것에 대해 쓴다. 공군다는 것은 수평적인 땅에서 무언가를 에워싸는 느낌에 가깝다. 오히려 "구석으로 몬다”는 표현에 가깝지만 이조차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십 년 넘게 서울말을 쓰면서 “공구다”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 상황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을 때 딱히 그렇지 않았다. 경상도말을 쓸 때는 “공구다”라는 단어를 써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도 서울말을 쓸 때는 그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경상도말을 쓸 때의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서울말을 쓸 때 굳이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을 느끼고 문득 샤워를 하다가 놀랐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뇌의 언어 스위치에 놀라움을 느꼈다.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국어를 쓸 때 “아깝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영어를 쓰다 보면 생각보다 아까운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설사 비슷한 상황이 온다 해도 다른 단어를 쓴다. 예를 들어 '아까우니까' 음식 싸갈래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영어를 쓰는 상황에서는 '나는 쪼잔하니까(because I’m cheap)', 혹은 '낭비하기 싫으니까(because I don’t want to waste it)'라고 말하게 된다. '아깝다'라는 말에 완벽히 상응하는 말은 없음에도 불편함이 없다. 왜냐하면 영어를 쓸 때는 아깝다는 생각을 잘 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기하다. 다른 언어를 쓰면 그 언어에 맞는 프레임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언어가 영어로 바뀌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뀌는 것이.


어제 위와 같이 끄적여놓았던 것이 공교롭게도 오늘 우연히 유튜브에서 자동재생된 영상으로 연결되었다. “How language shapes the way we think”라는 제목의 테드 강의였는데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좌우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덕분에 어제의 “공구다”에 관한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생각나는 단어와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언어는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파란색을 쓰는 표현이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이 “blue”라는 하나의 단어만 쓰는 영어권 사람보다 조금 전 보았던 파란색 카드가 어떤 파란색이었는지 더 빠르게 찾아낸다. 우리가 소라색과 군청색을 눈 감고도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꽃병이 깨지는 상황을 같이 보았을 때도, 영어권 사람들은 “누가” 깼는 지를 더 잘 기억하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그 꽃병이 사고로 깨졌는 지를 잘 기억한다. 이유는 영어는 “주어”를 강조하는 반면(HE broke the vase) 스페인어는 꽃병이 사고로 깨졌는지 여부를(it got broken) 중심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거나 비난을 주는 방식에까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한편 숫자를 순차적으로 세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숫자를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하기가 어렵다. 1,2,3,4,5라는 개념이 없으니 덧셈 뺄셈으로 이어지기가 힘든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가 말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보고 기억하는 방식까지, 나아가 우리의 뇌가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면 다른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같은 한국 내에서도 “공구다”라는 단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공군다는 단어 한 마디에 머리 속에서 이미 그 상황을 그려낼 수가 있다. 같은 맥락으로 언어체계가 비슷한 일본인과 한국인은 문화나 사고방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비슷한 것뿐만 아니라 언어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이다. 폴리네시아 사람들도 그렇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섬에 각각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를 썼기에 문화적으로 크게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반대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전 세계에서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5000만명 만큼 없어지는 것이다.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언어의 힘에 감탄할 수밖에다.


https://www.youtube.com/watch?v=RKK7wGAYP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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