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행일지

#1. 에필로그. 돌아온 집의 감상

by 담다리담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거창하게 무슨 글을 쓰려니 더 노트북을 여는데 준비가 필요했다. 여행 내내 짬짬이 글을 쓰려고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들고 다녔는데 단 하루 조금 깨작이다가 말았다. 어느새 나는 글과 멀어진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금 씁쓸했다. 그냥 단순히 일기처럼 쓰면 될 텐데 말이다. 이제는 조금 시간이 들더라도 아침에 일기를 다시 써보기로 생각했다. 나는 계속 글을 가까이하고 싶고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행에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쾌적했다. 가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를 해 두고 갔는데 그래서인지 돌아왔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 현관을 열었을 때 옅게 하얗고 노란 꽃향의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깔끔하게 줄지어있는 실내슬리퍼. 제 자리에 정리된 소파쿠션들, 군더더기 없는 아일랜드 식탁 위. 오랫동안 비운 집이라 냉기가 돌았음에도 밝은 조명에 따스한 느낌이었다. mis an plaz 미즈 앙 플라즈, 모든 것은 제자리에. 프랑스 요리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조승연 작가님이 말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으니 익숙한 공간에 포근함이 느껴진다. 남편에게 배울 점이다. 그는 일상에서 시간이 조금 더 들더라도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제자리에 둘 줄 아는 사람이다.


인천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왔지만 택시를 타고 와서인지 집에 도착해서도 노곤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출장 말고 내 돈으로 인천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 온 건 처음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함께 돌아오는 집이라서 큰맘 먹고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여행을 하고 함께 돌아오다니 새삼 결혼한 것이 실감이 났다. 택시를 타고 온 덕인지 비교적 풍족한 여행 덕인지 돌아와서도 크게 지치지 않았다. 내친김에 하나하나 짐을 풀었다. 뉴질랜드에서 마트 쇼핑한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맛있게 먹었던 케첩과 샐러드드레싱을 냉장고에 넣고 감자칩을 줄 세워두었다. 와인과 선물용 술도 제자리에 정리해 두었다. 친구들에게 줄 초콜릿을 정리하고 빨랫감을 내어놓았다. 내일은 하루 종일 세탁기가 고생 좀 하겠구나. 건조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도 씻고 나니 몸이 노곤해졌다. 오랜만에 누운 우리 집 침대는 생각만큼 포근하지는 않았다. 침대가 조금 딱딱하게 느껴졌다. 호텔침구가 괜히 좋은 게 아니구나 싶다가도 내 침대와 내 베개가 최고다 싶다. 그래도 단 하나, 구스토퍼를 사기로 다짐했다. 우리가 갔던 모든 호텔들에는 모두 구스토퍼가 있었는데, 이것이 주는 푹신함이 남달랐다. 기회가 생긴다면 큰맘 먹고 하나 장만하기로 다짐했다. 물론 여행 중 지갑 대출혈로 인해 한동안은 어림도 없긴 하다. 침대에 누워서 여행 중 못 다 본 책을 보다가 잠이 스르륵 들었다. 이디스 워튼의 여름. 책 속의 생동감 넘치고 싱그러운 여름의 자연을 눈으로 느끼다가 포근한 침대에서 잠들기. 역시 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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