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막바지에 들어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뉴질랜드 음식은 나와 잘 안 맞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아시아음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자주 먹은 것은 단연 감자. 뉴질랜드에는 어떤 음식을 먹든 감자를 먹게 된다. 1일 1 감자 할당량이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는 평소 감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감자튀김과 감자칩이 너무너무 맛있어서 참 많이 먹었다. 우리나라의 감자가 퍼석하다면 뉴질랜드의 감자는 조금 더 맛이 진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Fish and Chips가 뉴질랜드의 가장 맛 좋은 음식 중 하나였는데, 뉴질랜드의 좋은 감자와 물고기를 바삭하게 튀기니 맛이 없을 수가. 그렇지만 매일같이 튀긴 생선과 버거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아시아 음식은 spicy 하다고 하는데, 그 spicy가 매운 것이 아니라 향료를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느꼈다. 매운 것과 향신료가 있다는 것은 분명 절대 동의어가 아니다. 뉴질랜드 음식은 거의 영국, 미국과 흡사하다. 그들의 음식의 베이스는 버터와 오일이다. 어떤 생선과 고기를 가지고 오든 버터와 오일을 베이스로 요리되어 야채를 곁들인다. 입안에서 터지는 다양한 텍스쳐를 자랑하지만 입안 가득 차는 향은 찾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아시아의 음식들이 얼마나 Spicy 했는지 알 수 있다. 피시소스와 타마린드 소스를 듬뿍 넣은 달달한 맛과 새큼한 맛이 양쪽 펀치를 날리는 팟타이라던가 고춧가루와 산초가루 팍팍 뿌려 빨갛게 조려낸 생선조림이라든가, 강황가루 잔뜩 넣은 카레라든가. 가쓰오부시와 혼다시를 휘휘 우려낸 미소된장국조차 그들의 음식에 비하면 향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자극이 필요했다. 빨간 맛이라고는 토마토뿐인 이곳에서 혀를 찌르는 강렬한 맛이 필요했다. 튀김에도 나는 아이올리소스나 토마토케첩이 아닌 고추냉이와 양파절임간장에 찍어먹고 싶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사 먹은 팟타이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아이올리소스에 찍어먹는 감자튀김이 아닌 피시소스간장에 찍어먹는 스프링롤이라니. 그것만으로 입안에 풍미가 가득 찼다. 나는 풍미라는 단어를 버터가 들어간 음식에 자주 쓰고는 했는데(입안에 향이 가득 맴돌아서), 아시아 음식이야말로 단 짠 신 쓴 고소함까지 한 입에 느껴지는 맛의 폭죽이었다. 오클랜드에서 먹은 생선수프는 또 어떻고, 가쓰오부시와 조개육수를 지인 하게 우려낸 깔끔한 육수의 맛은 단연 여행 중 손에 꼽는다. 국물이 먹고 싶을 때마다 크림차우더를 먹던 내 입에 들어온 맑은 국물은 입 안 가득 퍼지며 행복을 흩뿌렸다.
나는 내가 이렇게나 아시아 음식이 필요한 사람인지, 그리고 음식이 여행에 이렇게 중요한지 이번 여행에서야 알았다. 나는 여행 갈 때 한식은 필요 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재작년 하와이 한 달 살이 동안 한식이 전혀 그립지 않았기에(심지어 들고 간 컵라면을 두고 왔다) 나는 음식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큰 착각이었다. 내가 한식이 그립지 않았던 이유는 하와이 도처에 일식과 각종 아시안 음식이 널렸기 때문이었다.
쫀득 고소한 동아시아 짧은 쌀에다가 신선한 생선다이스와 간장이나 고추냉이마요 소스를 얹은 포케는 아시안의 입맛을 손색없이 충족했고 우리 집 아래층에는 일본식 가락국수집에서 각종 가락국수와 오니기리, (간장에 찍어 먹는) 튀김이 있어서 언제든지 국물이 당길 때 먹을 수 있었다. 출발 전 캐리어에 한식을 바리바리 챙기는 남편에게 필요 없는 거 싸간다며 구시렁대었는데 막상 와보니 내가 더 잘 먹었다. 컵떡볶이 들고 온 우리 정말 칭찬해. 빨간 맛이라고는 토마토뿐인 뉴질랜드에서 혀를 찌르는 달달한 고추장의 맛은 킥이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의 해산물 원물은 정말 큰 즐거움이었다. 고기보다 해산물파인 우리는 유명한 소고기나 양고기는 뒤로 하고 물고기와 해산물에 빠져들었다. 시드니에서 처음 먹었던 굴은 단연 최고였다. 평소에 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리 둘도 달큼한 굴의 관자에 맛에 빠져들었다. 굴껍데기에 화이트와인에 숙성한 미뇨네트를 올리고 상큼한 레몬즙을 짠 후 후룩 입에 넣으면 비린 맛 하나 없는 상큼하고 달달한 바다향이 입 안 가득 찬다. 이후 굴로 가장 유명한 말보로에서 먹은 굴은 파인다이닝에서 먹는 굴 같았다. 굴 위에 상큼한 유자오이셔벗얼음을 올린 요리였는데 (감히 요리라 한다!) 평생에 먹은 굴요리 중 가장 맛있었다.
그럼 또 생선은 어떻고? 카이코우라의 생선 BBQ 트럭에서 시킨 성대는 기억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같이 먹은 랍스터는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는데, 흰 밥 위에 성대 한 점 올리니 달달하고 탱글한 생선 맛이 입안을 하얗게 가득 채웠다. 어느 식당에서 생선을 시키든 얼리지 않은 탱글한 생선 살이 살아 있는 맛이었다. 특히 오클랜드 마트에서 본 생선들의 양과 종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뉴질랜드는 단연 대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