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다. 오늘 파도도 차트가 괜찮았으나 역시나 파도가 작았다. 그래도 오늘은 파도가 일정하게 들어오긴 했고 덕분에 나름 재미있게 잡아탔다. 오늘의 보드는 NSP였는데 확실히 파도는 잘 잡히고 라이딩은 재미가 없다. 그래도 오늘같이 안 잡히는 날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안 잡힐 것 같은 파도도 잘 잡아탔고 다만 왼쪽으로 턴하려할 때 자주 빠졌다. 보드가 통통해서 턴하기가 쉽지 않다. 반응이 둔하다보니 왼쪽으로 도는 것이 더 잘 안 된다. 보드 영향 타지 않고 잘 타고 싶은데 그것은 참말 먼 길이다. 테이크오프할 때 조금 뒤로 빠져서 하는 연습을 더 하고 왼쪽으로 갈 때 뒷발을 밟는 연습을 더 해야지, 그리고 로깅연습도 살살 해 봐야지, 셔플하지 않고 게발가듯 앞으로 가니 그 또한 꼴이 우습다.
오늘은 처음으로 한국인을 보았다. 카누스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을 보았다. 나와 나이차가 크지 않은 여자 두 분이었다. 그 분들도 10일동안 여기서 서핑을 하신다고 하니 이제 자주 뵐테다. 일본인만 많아서 뭔가 아쉬웠는데 한국인 두 분이 오시니 반갑긴 하다. 그리고 제이슨이라는 친구도 새로 사겼다. 평택에서 미군으로 살았고 여기서도 미군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고 왠지 모르게 힘이 별로 없어보이는 모습이 내 디렉터를 떠오르게 한다. 저렇게 힘이 없어보이는 모습인데 군인으로 일할 때는 다른 모습으로 일할 지 혼자 잠시 궁금해했다.
오늘은 파도는 잔잔했지만 날씨가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있다 보니 네 시간 정도 탔다. 그럼에도 에너지가 남아있어서 어지간히 잔잔한 날이었구나 싶었다. 바다를 보며 스트레칭도 하고 명상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랬다. 그래도 참 좋았다. 아침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나중에는 조금 떠오른 그대로 예쁜 모습의 하늘이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을 때 즈음이야 서핑을 끝내고는 어제 장 봐 온 재료들로 꽤나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월마트에서 데려온 냉동야채는 하와이 자취생에게 꽤나 좋은 음식이다. 완두콩에 빈스프라웃에 옥수수까지 들어서 나름 맛이 좋은 채소들을 잔뜩 담았다. 후다닥 후라이팬에 볶은 스크램블에그와 빵과 치즈까지 더해서 알찬 점심을 맛 좋게 먹고는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낮잠을 잤다.
한낮이 되어 눈을 떠서는 주변 비치파크로 향했다. 카피올라니 공원 입구 해변 쪽에 자리 잡았는데 야자수 한 그루 당 한 명씩 아래 타올을 깔고 책을 보고 있느 것이 정겨웠다. 나도 그 중 한 명이 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워니가 남겨주고 간 책 - 이만큼 가까이 라는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 - 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찝찝했다. 그녀가 살아오던 작은 세상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본격적인 상실이 생기고 나서는 읽는 내내 꺼림칙했다. 지금 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활동적인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상실이라는 주제가 지금의 나와 꼭 와닿지 않았다. 화자의 생각과 말투와 직업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첫사랑을 잃고 방황하지만 끝내 그의 것을 일상과 자신에 흡수시켜 상실을 극복해내는 성장이야기. 다른 상황에서 보았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책은 사랑에 관한 new philosopher를 읽어야지
일요일,
새벽엔 파도가 너무 좋아서, 울고 싶을 정도로 파도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서 쉴새없이 탔다. 너무너무 즐겁다. 늘어져라 수다를 떨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말을 멈추고 보드를 돌려 파도를 타러 슬슥 팔을 젓는 일들이 많았다. 와이키키는 이렇게 나에게 또 물뽕을 놓아 맞아서 이곳에 영영 머무르고 싶게 했다. 그냥 렌트를 내고 음식을 살 정도로만 벌고 싶다. 작년 기준 시급 18달러, 앞으로 계속 올릴 예정이라고 하니 일주일에 25시간, 한달에 100시간을 일하면 1800달러다. 휴 최저임금 받아선 렌트도 못 낸다. 그렇지만 어찌저찌 방법을 찾아서 여기 살고 싶다. 모쿠에 한국인 남자 직원분이 오후에 출근하시는 것 같던데 만나면 지원조건이나 페이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파도도 더 좋을 거라고 하는데 기대된다!! 그리고 그간 나를 종종 슬프게 해 왔던 피부 알러지가 거의 다 나은 것 같아서 맘껏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입고 나왔다. 등에 얼룩덜룩 하얀 부분도 없앨겸. 그런데 바람과 날씨가 심상찮다. 햇살이 정말 좋은 나날들에는 알러지때문에 긴팔긴바지로 무장하고 다녔건만 다 나을만하니 비가 온다고 해서 조금 속상하다! 그렇지만 파도가 좋아지는게 더 좋아. 오늘 들은 말중에 가장 좋은 말: you have good vibe, 하와이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다. 그냥 인사말이 아닌 한참 대화를 나눈 후에 해 준 말해줘서 더 좋았다. 장소에 따라서 사람의 기분과 행동이 이렇게도 바뀔 수 있구나. 나를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장소에서 살고 싶다. 웃고 활동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런 곳으로 나를 옮겨두고 싶다. 이 날은 new philosopher 사랑 편을 들고갔는데 한 자리에서 거의 다 읽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이 잡지를 한 자리에서 다 읽는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여기서는 술술 읽힌다. 여기서의 내가 좋아! 한국 돌아가면 중고차를 사고 살살 준비해서 집을 정리해야겠다. 가벼이 언제든지 어디로 떠날 수 있는 기동성이 가장 중요하다.
저녁에는 서핑친구 에드가 추천해 준 영화를 보았다. '워터맨'이라는 영화로, 하와이의 상징같은 존재인 수영선수이자 서퍼 듀크 카하나모쿠에 대한 얘기였다. 그가 인종차별이나 시대적 편견을 깨고 수영선수로, 나아가 서퍼로 이름을 알리는 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는 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영화였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초반의 하와이의 모습과 폴리네시아의 상황도 엿볼 수가 있어서 너무너무 흥미로웠다. 컵라면과 코나맥주,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과 함께 하와이영화를 보는데 뭔들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가 가진 능력에 비해 그는 굉장히 겸손했고 또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그가 단지 피지컬이 좋은 수영선수가 아아닌 영웅적인 면모를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하와이에 강한 파도가 불어닥쳐서 작업하던 어선이 완전히 뒤집히는 일이 일어났었다. 이것을 발견한 듀크는 서핑보드를 들고 가서 한 명 한 명씩 싣고 나왔다. 총 13명 중 8명은 산 채로 싣고 나왔고 나머지 5명은 죽은 채로 싣고 나왔다. 이후 이 일이 알려져 기자들이 왔을 때 그는 구하지 못한 5명에게 면목이 없어서 숨었고 자책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이 그 때 호주에서의 서핑인데, 1910년대 1차대전이 한참이던 그 때 호주에서는 서핑이 한참 유행이었던 것 같다. 다만 형태가 아직 시작 단계라 하와이의 서핑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고 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듀크가 호주에 왔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서핑 데모를 부탁했다고 한다. 서핑보드가 없던 그가 나무를 깎아 보드를 만들어 서핑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보드를 깎는 것부터 그의 서핑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배우고 또 환호했다고 한다. 호주에서의 서핑은 100년도 전으로 거슬러가는구나 싶기도 한 동시에 폴리네시아 끝부터 끝까지(호주가 폴리네시아는 아니지만) 서핑이 이렇게 퍼져있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