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하지 않은 하루들

싱가폴의 소소한 기쁨

by 담다리담

이곳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 하면 단연 러닝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지내는 호텔에서 10분만 걸으면 마리나베이몰이고, 그곳에서부터 가든스바이더베이까지 러닝코스가 쭉 이어진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지 않으니 저녁에 여유가 생기면 러닝웨어를 입고 무작정 나간다. 걷다 뛰다를 반복할 때도 있고, 남편이나 친구와 전화를 하며 걸을 때도 있다. 복장은 마라톤 선수처럼 해서 맨날 걷는 사람이라 소문나겠다고 남편이 놀리지만, 아무렴 좋다. 굳이 따지자면 내 목적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보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 가깝다. 크게 즐겁지 않아도 평온하고 만족스럽다.


러닝이 끝나면 맥주 한 잔 하며 목욕을 할 때도 있고, 유튜브를 보다 잠들 때도 있다. 이렇게 움직이고 들어오면 내일의 조식이 또다시 기대된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이 이어진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제는 가든스바이더베이를 갔다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마리나베이의 불꽃놀이도 지나가다 우연히 봤다. 디즈니에서 스폰서하는 불꽃 축제인 것 같았다. 그제는 가든스바이더베이의 레이저쇼를 봤다. 저녁 8시쯤 나가면 항상 무언가가 펼쳐지고 있다. 한껏 상기된 관광객들의 표정과 설레는 몸짓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된 것 같다가도, 이런 것들을 매일 볼 수 있는 삶이 얼른 끝나버릴까봐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오늘은 한국에 다녀온 뒤 첫 주말.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의 아침을 일주일 내내 기다렸었다. 풀 냄새가 가득하고 새가 지저귀는, 인공낙원 같은 그곳을 오늘도 여유롭게 걷고 또 뛰었다. 돌아와서 조식을 먹었다. 오늘의 메인은 치킨라이스. 언제나 신선한 샐러드와 과일, 요거트를 챙겨 먹을 수 있어 내 식성에 잘 맞는다. 혼자 살면 매일 누리기 어려운 사치다. 잠시 쉬다가 이제 위워크에 왔다. 멋진 뷰와 텅 빈 라운지를 혼자 쓰고 있자니 참 좋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여유로운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면서 시간의 여유까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도 사무실에서 하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인정도 더 받고 있다. 아침엔 스트레칭, 저녁엔 러닝을 하며 몸도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빨래를 제외하면 모든 집안일에서 해방시켜주는 호텔 서비스 덕분에 시간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즐길 수 있도록 날씨와 자연이 두 팔 벌려 환영해준다. 아침이고 밤이고 언제든 나가도 쾌적하고 안전하다.


평소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느라 늘 후순위로 미뤄왔던 것들을 이제는 충분히 우선순위에 두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추워서, 비가 와서 나가지 않았던 변명들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항상 더운 날씨와 일정하게 뜨는 해가 나를 규칙적으로 만들어준다. 지난 설 연휴에 며칠간 비가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즐겁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일을 제때 끝마치고, 저녁에는 러닝이나 산책을 가는 일상을 이어가고 싶다. 요즘은 일찍 출근하고 점심을 짧게 먹으면 7시에 충분히 마칠 수 있다. 매일 7시에 퇴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삶을 유지해야지. 벌써 호텔을 떠날 때가 걱정이다. 그때는 자전거로 출근하겠다는, 꽤 거창한 계획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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