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분이 우울해요.
나는 다이어리를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매년 다이어리를 산다.
살 때는 매번 끝까지 잘 쓸 것이라고 다짐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귀찮아져서
안 쓸걸 아는데도 산다. 일단 사고 본다. 사면 새로 시작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드니까.
한 해를 리셋하는 기분 좋은 방법 중 한 가지가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제 당근 어플을 열었는데 별다방 다이어리가 만원에 올라와 재빨리 채팅을 보내고 오늘 오전에
가서 받아왔다. 만원의 행복이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만원 보다 더 높게 쳐서 받는데 천사이신가?
득템 했다. 그런데 날이 너무너무 추워서 왔다 갔다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다이어리를 들고 가는
손이 너무 시렸다.
나는 당근을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노트북을 산다고 이용했고, 또 다이어리를 산다고 이용했다.
사람들이 왜 당근에 중독되는지 알겠다. 일단 편하다. 쇼핑도 잘 안 하는데 당근에 들어가면 뭐 살 거 없나
싶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본다. 또 우리 집에서 뭐 내놓을 건 없나 찾아보기도 한다.
무슨 소비 심리일까.
아무튼 26년 다이어리를 잘 구매했으니.. 이번엔 26년 12월까지 꽉꽉 채워서 잘 써야지. (1년 뒤에
다이어리에 대한 글을 올려보겠다.)
다이어리 얘기는 이쯤 하고 다이어리를 사서 기분이 좋았는데 오후에 메일 한 통에 기분이 다운됐다.
나는 영화감독이다. 영화를 세 편이나 찍었으니 감독이 맞지 않은가?
아님 수상이나 상영을 못했으니 감독이 아닌가? 돈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인가?
사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없으니 누가 나에게 감독님이라고 하면 오글거리긴 하다.
아무튼 데뷔한 첫 단편을 운 좋게 올 초에 배급사와 계약을 했는데, 내 영화는 배급사 인스타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가 없어서 방치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조금 부족해서였을까.
믹싱도 하지 않은 영상이었다. 올 8월에 재편집과 믹싱을 새로 하고 기술적으로 조금 보완이 된 게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완성하고 그대로 배급사에 교체 및 올해 출품한 영화제 리스트를 알 수 있냐고 문의했고
금요일인 오늘 답장이 왔다.
영화가.. 참 여기저기 많이 출품이 됐더라.
오히려 출품 리스트를 보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난 뭘 원망한 걸까. 내 실력이. 내 영화가 그 정도밖에 안되었던 건데.
배급 담당자님께서 영상 교체 및 전주 국제 영화제에 출품 예정이라고 하셨다.
별 기대는 없다.
그런데 그나마 보완한 영상으로 내년엔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머지 두 편중 한 편은 무비블록이라는 단편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렸다.
나머지 한 편도 cg 작업이 필요해서 보강 후 영화제 출품 예정이다. (이 작품도 배급의뢰를 했는데 다 거절당했다지..)
올해는 정말 거절에 거절의 탈락의 끝이었는데.
내년엔 두 날개의 끝이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영화를 세 편 찍으면서 쓴 돈을 생각하면.. 남들은 월급 받아
뭐 하길래 돈이 없냐고 물어보는데 영화 찍었다고 할 수도 없고.. 줄줄 새는 데가 있으니 돈이 없지 않겠냐고
받아치긴 하지만, 나도 참 아직도 철이 없는 건지 돈이 생길 구멍이 있으면 영화를 또 찍어볼까 슬금슬금
욕구가 올라오니. 천상 돈 못 모으는 사주가 맞다.
다음엔 영화를 찍게 된 계기를 한 번 적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년 봄에 찍을 영화 얘기도 과감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하루에 한 편.
에세이를 써보려고 한다.
솔직하고 꾸밈없이 글 쓰는 게 내 글의 장점이니까. 편하게 읽어주시리라 믿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