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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하다 Mar 17. 2021

아지트 노마드

<콩나물하다>시즌1 - 9화

착하지만 답답한 고구마와 똑부러지지만 잘 삐치는 오이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퇴근하고 노마드에서 시래기와 가지와 시금치를 만나기로 했다. 

고구마와 오이의 싸움에 등 터진 우리들의 은밀한 저녁 약속은 근처 고궁 뒤에서 점심 대신 과자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성사됐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가지가 메신저를 보냈다. 



“콩나물~ 오늘 연근 몸에 구멍 투성이야, 연근도 데리고 갈게. 대충 정리하고 나와”


우리는 비밀 작전을 펼치듯 시간차를 두고 퇴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정리하고 나가려 하는데 고구마가 말했다.


“콩나물~ 오늘 고생 많았지? 저녁 약속 없으면 한 잔 하자 내가 쏠게.”
“앗! 제가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급하게 말했는데 뭐. 혹시 나 빼고 가지랑 한 잔 하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요. 다음에 다 같이 한 잔 해요.”



나는 눈 한번 꿈뻑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노마드는 회사에서 3분 거리에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 방향으로 빙 둘러 갔다.

주문한 부침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막걸리 주전자는 벌써 비어있었다. 

손 때가 가득한 노마드에 오니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한지로 둘러싸인 갓등 아래, 흠집은 많지만 부드러운 목재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착하지만 답답한 고구마와 똑부러지지만 잘 삐치는 오이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오디오 클립 링크 - 9화 아지트 노마드


* <콩나물하다>는 오디오 클립을 통해 음성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오디오 클립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글. 고권금, 허선혜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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