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하다>시즌1 - 9화
착하지만 답답한 고구마와 똑부러지지만 잘 삐치는 오이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퇴근하고 노마드에서 시래기와 가지와 시금치를 만나기로 했다.
고구마와 오이의 싸움에 등 터진 우리들의 은밀한 저녁 약속은 근처 고궁 뒤에서 점심 대신 과자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성사됐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가지가 메신저를 보냈다.
“콩나물~ 오늘 연근 몸에 구멍 투성이야, 연근도 데리고 갈게. 대충 정리하고 나와”
우리는 비밀 작전을 펼치듯 시간차를 두고 퇴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정리하고 나가려 하는데 고구마가 말했다.
“콩나물~ 오늘 고생 많았지? 저녁 약속 없으면 한 잔 하자 내가 쏠게.”
“앗! 제가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급하게 말했는데 뭐. 혹시 나 빼고 가지랑 한 잔 하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요. 다음에 다 같이 한 잔 해요.”
나는 눈 한번 꿈뻑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노마드는 회사에서 3분 거리에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 방향으로 빙 둘러 갔다.
주문한 부침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막걸리 주전자는 벌써 비어있었다.
손 때가 가득한 노마드에 오니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한지로 둘러싸인 갓등 아래, 흠집은 많지만 부드러운 목재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착하지만 답답한 고구마와 똑부러지지만 잘 삐치는 오이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오디오 클립 링크 - 9화 아지트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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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권금, 허선혜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