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삼 Sep 25. 2019

통제 우선 vs. 권리 우선

과유불급이 문제일 뿐

7살짜리 딸아이를 키우면서 내게 접해지는 많은 정보들 가운데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단연 아이의 교육 방법이다. 통제된 교육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유로운 교육을 통한 자아 중심의 권리 우선이 중요한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을 미리 말하자면, 지나치지만 아니면 둘 다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좀 억지스럽게 비유하자면 통제가 강하면 아이들이 군인처럼 살아갈 것이고, 권리 중심적으로 키우면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 심하면 이기주의로 살아갈 것이라 본다.

우선 아무리 교육 성격이 통제적이든 권리 중심적이든 간에 , 어느 정도 지배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성장과정에서 아이의 주변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그리고 아이의 천성이나 성향에 따라 아이에게 발현되는 교육 효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 두고 싶다. 아무리 엄격한 집안에서 교육을 받아서 살아왔다지만 성인이 되어 정작 자신의 모습은 자유분방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 주변에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자유롭게 성장했어도 자기 스스로 규제나 규범에 자기 자신을 놓이게 하고 법 없이도 잘 사는 사람도 또한 흔하다.


과연 어린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통제적인 교육이 효과가 더 좋을까? 아니면 권리 중심주의적 교육이 효과가 더 좋을까? 달리 말하자면, 엄격한 프랑스식 교육이 더 좋을까? 자유로운 한국식 교육이 더 좋을까?

어쨌든 요즘 들어 주위에서 어느 나라식 교육이 더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언급들을 많이 하는 게 사실이고, 요즘 내가 딸을 키우다 보니 교육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화제를 들어보면 주로 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아이를 아이답게 키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아이답게 키위기 위해서 많이들 노력을 하고 있다. 나부터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를 아이답게라는 말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무례하게 또는 지나치게 아이가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방치하는 것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 아이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상황이며, 이것은 오직 아이 혼자 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육에서 통제가 어느 정도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해당된다. 그리고 노출에 가장 민감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흡수력이 가장 좋을 때가 유아기인데 이때 받는 교육에서 통제가 빠진다면 오히려 아이 자신에게 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게 된다. 자기 자신만 아는 아이로 자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보니 진학할수록 사회적이기보다는 비사회적인 형태의 인생을 살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물론 집 안에 여유가 많아서 비사회적인 형태로 살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상관은 없겠다.


아이가 아이답게라는 말은 순수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뛰어놀고 사람과 사물, 동물에 대해 지나친 편견 없이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을 뜻한다. 아이라서 남에게 피해를 줄 만큼 소란을 피워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최근 뉴스에서 알려진 수원 초등학생 폭행사건을 봐도 초.중학생이라지만 어른에 비해서 아이인데 그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교육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에 카페에서 가족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꼬마 아이가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엉덩이나 수치스러울 수 있는 곳을 남녀 상관없이 손이나 머리로 치고 다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어른이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약간 엄한 어투로 꾸중을 했더니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재빨리 다가와서 하는 말이 "아이라서 그러는데 뭐 그리 화를 내느냐"라고 되려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이를 아이답게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미 그의 아들은 자신의 재미와 쾌락을 위해서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아이의 아버지 자신만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특히 이런 모습이 고착화되면 성장하는 동안 남을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기 쉽다.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주의를 주거나 따끔하게 꾸중을 했을 것이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수반되는 어른의 꾸중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 인생을 바로 잡는 행위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아이의 미래도 무시한 행동이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어느 정도 통제적인 교육 환경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물론 획일적인 집단 교육형태의 모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통제적인 교육은 다 같이 모여서 교육받는 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반드시 따라야 할 규제에 대한 통제를 뜻한다. 현대 사회는 규에 의해서 사회를 유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법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욕을 하지만 그래도 바뀐 법을 잘 따라가며 살고 있다. 최근에 바뀐 음주운전 기준이 그 예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따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사회 속에서 남들과 큰 문제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제에 잘 따르며 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선진국인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권리 우선주의의 교육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책임감을 배제한 형태의 교육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의 교육은 항상 아이들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동시에 책임감에 대한 교육도 함께 반영시킨다. 정작 권리 우선에 대한 잘못된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잘못을 했지만, 나의 소중한 아이라서 그냥 잘못을 넘기려 한다거나 잘못을 해도 기가 죽을까 봐서 되려 잘했다고 칭찬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러한 부모의 교육이 아이에게 책임감 없고 권리만 외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위해서 한 두 번 눈감아주는 심정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지만 아이에게는 부모의 그런 편의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너무나 달콤하고 편리한 것이어서 스스로 당연하게 각인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계속해서 책임감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실례로 부모가 바빠서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에서 가끔씩 유사한 경우를 지켜볼 수 있다. 조부모와 생활하다가 부모와 잠시 만날 경우 아이가 지나치게 말을 듣지 않은 경우를 발견하는 데 아이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된다고 해서 자유롭게 했는데 모처럼 만난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면 당연히 말을 따르지 않게 되는 법이다.

우리 딸아이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다녀오면 갑작스럽게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아이 머릿속에는 자기 부모가 조부모보다 나이가 적고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부모가 옳다고 했으니 조부모의 지지를 얻어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발견했던 적이 있다.


요즘 들어서 아이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이라 본다. 문제는 아무리 나이 어린아이라도 쓴맛과 단맛 정도는 쉽게 구분한다. 아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동적인 실체라 생각지 말고, 한 인간으로 보고 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일관성 있고 항상성 있는 통제를 통해서 아이들의 무절제한 행동을 관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관리된 상태에서 아이의 책임감이 바탕된 권리를 자유롭게 부여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는 어른을 보고 자란다. 어른이 교육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무책임하고 권리만 외쳐대면 아이도 그렇게 자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책임감 있는 권리를 지향할 것이다. 또한 너무나 통제 속에서 자라면 왜곡된 형태의 아이 성장을 기대할 수 있으며, 적절한 통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 잡음에 매우 유익한 교육이라 사료된다.


그리고 초두에서 언급했듯이 어느 나라 식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간에 교육 방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제와 아이의 권리는 항상 공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억압되길 바라겠는가? 대신 아이가 사회 일원으로 잘 살 수 있도록 규제를 배우는 과정에 통제가 필요했을 뿐이다.

게다가 어느 나라식을 따른다 해도 그 나라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100프로 같은 양태로 따라 할 수나 있을까?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교육 방법은 아이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교육에 집안의 가정교육 더욱더 신경 쓰는 것이 옳은 일이라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때문에 새롭게 접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