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처음 하는 일이 있다면, 아마도 내 생일상 내가 차리는 것이 아닐까...
생일상을 받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주부들은 생일상을 받기보다는 주로 해 주는 쪽이 많을 것이다.
이번 생일은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지내고 싶지만,,, 생일에 대한 관심은 정작 본인보다는 가족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내와 딸이 아빠 생일이라고 한 주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심지어 이번 생일 선물은 2차례나 받아서 황공할 따름이다. 미싱기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받았다.
그렇게 일종의 조용한 페스티벌 기간처럼 내 생일을 알리는 여러 날이 지났다. 그리고 정작 생일날 전날에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생일상 내가 차리게 된다. 약간 어색함은 있었지만, 뭘 만들까 하는 생각에 금세 요리에 빠졌다. 그러다 문뜩 옛날 기억이 떠 올랐다.
나의 모친 생일은 늘 할머니 제사 다음다음 날이었다. 모친은 늘 입버릇처럼 "내 생일은 할머니 돌아가신 날 뒤라서 먹을게 많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를 일 년마다 한 차례는 꼭 했었다.
어찌 생각하면 제사 준비한다고 힘들었는데 연이어 자신의 생일상을 스스로 봐야 하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작 당신 생일날 아침에 올라오는 음식은 다른 가족과 별반 차이 없이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당신이 좋아하시는 미역국이 더 걸쭉하고 양이 많은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 분명 신경 쓰지 않을 거라 하셨는데, 다른 생일상과 큰 차이가 없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신경 쓰지 않을 거라면서 아버지 생일상이나 형이나 내 생일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생일상이 어디 나만 위한 생일상이냐? 가족들이 다 함께하는 상이 생일상이지...
당시에는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우문현답이었던 셈이다.
오늘, 내 생일 전날,,, 음식을 준비했다. 격식은 없지만,,,
이것저것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꼬막, 장모님께서 하사하신 민어 조기 두 마리,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빠표 쿠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 본 돼지고기 해산물 찜과 마구로(참치 횟감) 미역국. 아! 그리고 어쩌다 함께하게 된 투썸플레이스 케이크까지....
올해도 아빠가 맥주 좋아한다고 하니... 딸아이 선물은 버드와이저 맥주 5캔이다. 버드와이저는 개인적으로 최고로 좋아하는 맥주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생일의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을 새롭게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