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균형

by 공삼

힘의 균형은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삶의 요소이다.

물리적 현상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동안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힘의 균형, 당과 당 사이의 힘의 균형, 나라와 나라 간의 힘의 균형, 우주와 지구 간의 힘의 균형, 나아가 우주와 또 다른 우주와의 힘의 균형이 존재한다.


원래 균형이라는 뜻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를 뜻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개인적 관점에서 균형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서 사전적 의미의 균형은 대부분 인위적인 것들이다.

저울을 잴 때나 균형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널 때 사용하는 것이 사전적 의미에 적합하다고 본다. 이러한 균형에 대한 정의는 경제학이나 정치학적 측면에서 사용되는데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두 대상 간의 균형은 아니다.

경제학적 측면에서의 균형은 안정이 잡힌 상태로 설명이 된다. 즉, 천칭 저울이 균형이 맞으면 움직이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 천칭의 균형과는 달리 균형의 상태에 있으면 그 이상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마샬(Marshall, A.)의 주장이 뒷받침한다. 마샬은 장기균형상태는 변동이 더 이상 없는 상태이며, 기업이 정상이윤만을 얻고 초과이윤을 얻지 못하므로 생산규모를 증감시키지 않고, 따라서 순투자가 0인 상태라 설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균형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맞추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균형의 의미를 상호의 이익이 충당된 안정된 상태라고 봄과 동시에 스스로가 안정을 위해서 "인정"을 하는 것이라 본다. 다음의 경우들을 생각해 보면 "인정"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사장과 직장인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권력자와 피 권력자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간 사이

강아지의 서열 사이 등등


세상은 한쪽이 넘치고, 또한 한쪽이 부족한 상태로 이루어져 있고, 누군가가 힘이 크다면 힘이 작은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고 있다. 사장과 직장인 사이를 두고 보면 외향적으로는 사전적 의미의 균형과 맞지 않다. 그러나 직장인은 스스로가 직장인으로서의 입장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장과 직장인 사이의 관계가 안정적일 수 있다.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정치와 외교에서도 똑같다. 힘이 없다면 힘이 있는 상대에게 의존적 관계를 형성하여 안정을 찾으려 하는 모습인 셈이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매우 씁쓸한 반응을 접할 수 있다. 너무 왜곡된 해석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쯤 해서 나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하기 위하고자 한다. 나는 갑을 구조를 찬성하거나 부정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그저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균형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나누고 싶은 욕심뿐이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과 후가 존재한다. 하다 못해 쌍둥이로 태어나도 몇 분 앞에 태어났다는 사실로 형과 아우로 나뉜다. 순수하게 앞과 뒤, 전과 후 개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로 분쟁이 생기는 이유는 원래의 안정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데서 출발을 한다. 이런 현상은 매우 당연하며 경우에 따라 필요한 작용이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 후진국이었지만 내일도 후진국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선진국과의 관계 속에서 선진국은 늘 아래에 있기를 바라는 맘이 있겠지만, 후진국은 하루빨리 개선되고 발전되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 심지어 중국과도 "말"이 많은 것은 이와 같은 현상과 비슷하다고 본다. 나머지 3국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이 자기들보다 늘 아래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국제정세와 안보를 문제 삼고 있는데, 이전의 균형적 관계가 무너지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반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대한민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면 이전의 우리나라보다 앞섰던 나라들은 또 다른 비용을 들여서라도 균형을 찾아서 안정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인데, 새로운 것에 투자하기보다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기업과 기업, 기업 내 조직, 학교 내 조직, 심지어 가정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내 주위에 문제가 생겼다면, 특히 힘의 균형과 연계된 문제라면, 안정화를 위한 고민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갑과 을 사이가 균형을 이루어 안정된 상태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보 입수와 교육, 더 나은 것에 대한 욕구 등이 발현되어 전보다는 점점 역량이 확대되어 성장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을은 기존의 갑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할 것이다. 반대로 갑의 경우는 기존의 안정화된 상태에 대해 이미 만족하고 있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서 변화에 대해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갑과 을 사이의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어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안정화를 위한 힘의 균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을의 현상유지가 해답일 것이다. 개선과 발전에 대한 해법은 가지고 있으나 현상유지를 통해서 지금의 균형을 깨고 싶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을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을로 남을 수 없다는 이유다. 왜냐하면 현상유지를 오래 지속하면 자연 퇴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을은 현상유지도 현상유지이지만 자연 퇴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다음은 갑의 양보이다. 을의 발전을 당연하게 인지하고 이에 대한 스스로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정도 을을 위한 양보를 통해서 더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을을 위해서 양보하는 갑은 참으로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비유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은 스타벅스의 직원을 위한 복지나 어느 모기업의 회장이 회사를 정리하면서 정리 해고되는 직장인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일부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는 갑은 을의 발전과 변화를 인정하고 일부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이고, 을은 갑과의 힘의 균형을 고려하여 갑이 을을 인정할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이상적인 변화는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특수한 상황일 것이다.

어제까지 대기업 하청업체였던 중소기업이 오늘부터 중견기업이 되었을 경우, 기존의 대기업의 대응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때와 달리, 중견기업에 걸맞은 대우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견기업과의 연계 속에서 대기업 측에서 또 다른 이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갑을 사이에서 언제나 변화는 도래할 것이고, 그 변화를 발전적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갑이 을에 대한 양보와 대우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세상이 갑과 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시간을 타고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갑과 을을 형성하는 힘의 균형을 찾아서 발전해 왔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안정을 위한 힘의 균형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며 살 것이라 본다.



오늘 아침, 딸아이 등원을 하면서 갑자기 옛 생각이 떠올랐다.

5~6살 때까지는 아이는 자기 욕심대로 움직이려 했다. 그런 모습에 아빠는 저지하고 꾸중하고 질책했었다.

7살이 된 딸아이는 이제 적당히 욕심을 부린다. 그로 인해 전보다 아빠의 꾸중과 질책이 많이 줄었다. 더욱이 아이와 대화가 잘 통해서 큰 문제가 없다.

아마도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아빠와의 힘의 균형을 비틀 것이라 본다. 결국 사춘기를 겪는 아이는 그 자체로 성장하는 것이고, 아빠는 성장하는 사춘기의 딸에 맞게 양보하고 인정해야만 새로운 힘의 균형이 만들어질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서로를 위한 Win-win일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서로를 위한 Win-win은 어쩌면 끊임없는 변화와 이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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