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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Dec 15. 2019

어른들의 싸움을 보는 듯한 어린이 싸움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보통은 그냥 넘기고 싶지만, 막상 내 아이가 다른 아이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니 단순하지가 않게 된다. 

올해 초 이곳 김해로 이사를 와서 딸아이는 유치원 다니며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만나는 또래의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그냥 집에 와서 놀라고 말하지만 늘 외로운 내 딸은 꾸준히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서 논다. 또래 아이들과 호흡하는 것은 당연히 즐거운 일일 테니.


오늘도 날이 좀 풀려서 놀이터에 나가고 싶다길래 그렇게 하라 하고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의 키즈폰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 통화가 끝날 무렵 주위에서 "얘 나쁜 얘야" "얘 나쁜 얘야" "얘 나쁜 얘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 혹시나 해서 창밖을 보니 어떤 여자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내 딸에 대해서 뭐라 뭐라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부랴부랴 내려갔더니 딸은 안보였다. 전화를 했더니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혼자서 울고 있는 딸을 발견했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남자아이가 너무나 귀찮게 하길래 가지고 있던 바람개비로 얼굴을 쳤다고 한다. 그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어쨌든 내 딸이 다른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그리고 한 여자아이가 그 모습을 기억해서 다른 동에 사는 아이들에게 내 딸은 나쁜 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내 딸이 나쁜 아이라고 모두에게 소문낼 거라고 했다 한다. 

그 말에 딸은 풀이 죽어 있었고 나머지 친구들도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선 나는 내 딸아이가 잘못한 사실에 대해서 주지시켜 주었다. 만일 아이를 바람개비로 얼굴을 때렸을 때 말했더라면 아마도 오래전에 혼이 나고 맞은 아이에게 가서 사과를 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거의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그 기억을 되살려 남들에게 내 딸이 나쁘다고 말한 것이 너무나 속이 상했다. 지금까지 줄곧 같이 잘 놀았음에도 왜 하필 오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큰 목소리로, 지나가는 어른에게도 나쁜 아이라고 떠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리 짐작하는 답은 아마도 내 딸이 보기 싫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집에 들어가려다 정확한 사정을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놀이터에 놀고 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랬냐고. 

그랬더니 이전에 그렇게 나쁜 짓 했다면서 열을 올린다. 게다가 반말까지 하면서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한참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 그렇다면 바람개비로 맞은 아이는 네 동생이었니? 

- 네 동생이에요.

- 친동생이란 말이니? 

- 아니 그건 아니고요. 아는 동생이에요. 

- 그렇다면 그 일이 언제 일어난 일이지? 

- 이전에요. 

- 봄 아니니? 

- 봄 맞아요. 

- 그럼 정말 오래전 일인데 왜 하필 오늘 큰 목소리로 다른 아이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한 거니? 

- 나쁜 아이니 까요. 

- 그럼 그전에도 같이 놀았을 텐데 그때는 왜 말하지 않고 오늘 이야기하는데? 

- 나쁜 짓을 했으니까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 혹시 내 딸이랑 놀기 싫은 거니? 

- 네, 정말 보기 싫어요. 

- 그럼 그거였네. 네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오래전에 있던 이야기를 한 거네. 맞지? 

- 네 맞아요. 

- 그렇다면 서로 안 놀면 되겠네? 맞지? 

- 네 보기 싫어요. 

- 그럼 서로 함께 놀지 않으면 되겠네. 그러니 내 딸아이에게 말해 둘께 너랑 놀지 말라고 알았지?  대신 하나만 부탁하자. 네가 내 딸아이를 욕할 수는 있어. 하지만 내 딸이 듣는 앞에서 하지 말아 주길 바라. 

- 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 혹시 너희 집이 여기 103동이니? 

- 네 

- 그럼 몇 호에 사니?

- 호는 몰라요. 

- 그럼 몇 층이니? 

- 몰라요. (답을 회피했다.)

- 그래 알았다


라고 말하고, 우리 집 동과 호수를 알려 주고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알리라고 말을 해 두었다. 어른 싸움으로 이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혹시나 필요하다면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집에 나와서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가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 아이는 103동이 아니라 다른 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니 어이가 없었다. 


아이를 육아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상당히 많이 접하지만, 어른이었다면 문제가 될 법한 일들이 많이 터지는 편이다. 조금 과장된 생각이지만, 만일 성인들이 이와 같은 싸움을 했다면 어땠을까? 당사자 간 문제를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면서 상대를 폄하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널리 알렸다면 분명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흡사 악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후 사정을 떠나서 현재 내 딸아이는 아파트 아이들과 쉽게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는 이미 알고 있으나. 이런 문제를 딸아이에게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단순하게 오늘도 집에서 놀고, 유치원에서 친한 친구들이랑 놀라고 권유할 뿐이다. 


어쩌면 아마도 내가 육아를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유독 날을 세우는 아이들과 많이 부딪히는 건지 요즘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저 나 때문에 내 딸이 그렇게 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이제 이런 뉴스가 남일 같지가 않다. 전과 달리 눈에 유독 들어오기 시작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626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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