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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Dec 18. 2019

좋은 사람 이야기 하나

가족을 제외하고 나에겐 정말 소중한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남들처럼 친구를 많이 두지 못했다. 

그 흔한 초중고 동문 친구들과도 함께하지 못했고, 그나마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제는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가 없다. 


그래도 하늘은 외롭게 살지 말라고 친한 친구 몇은 두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비슷한 친구는 아니다. 나보다 8살 손 아래 친구와 나의 형님보다 나이가 많은 손 위 친구가 전부다. 덕분에 나는 친구라는 범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이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 있어서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를 배웠다. 


좋은 사람 이야기 하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와의 처음 만남은 일로써 만났다.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연구소에 일을 할 때 알게 된 친구인데 관계상으로는 일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러다 그의 한결같은 모습과 아무런 이유 없이 같이 술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녁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다. 무엇보다 같이 저녁 먹자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했다. 혹시나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마음에서 망설였다. 


그래도 수년간을 학교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접한 사람이라면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친구였다. 

게다가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과도 늘 경쟁에 놓여 있던 탓에 항상 긴장을 하며 살았었다. 그나마 그 친구를 접할 때만큼은 긴장보다는 미소가 스며 나왔고, 자주 볼수록 나 자신의 경계심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연말이라는 핑계 덕분에 함께 저녁을 할 기회를 가졌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그 친구는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로 더욱 친해졌으며 서로가 함께 저녁을 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더욱 친해졌었다. 


나보다 더 많이 베풀 줄 아는 그 친구라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점도 있었다. 이유는 나는 그렇게 베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서로가 만나서 서로의 고민을 토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아내와 동창이었다는 사실에 더욱더 친밀해졌었다. 흔히 남자들이 만나면 나이로 서열을 구분 짓는데 나는 그런 게 싫었다. 그래서 친구 하자고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서로가 존댓말을 쓰며 친분을 쌓아가고 있다. 존댓말 하는 친구... 하루는 딸아이가 물어보았다. "아빠,, 친군데 왜 존댓말 써요?  친구면 반말하는 거 아니에요?"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가 너무 소중하면 존댓말을 쓰고 싶어 질  때가 있어."라고... 여전히 딸아이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부산에서 이곳 김해로 이사 와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서로 만나서 저녁을 함께하고 있다. 

내가 이사 간다고 할 때 서운해하면서 "걱정 마이소 내가 갈게요"라고 말했던 친구였다. 그리고 나도 틈나는 대로 오겠다고 말하였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이제 그 친구는 내 딸에게는 삼촌이 되어 있고, 나도 그 친구의 가족에게 삼촌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족이 아니면 서로의 마음을 쉽게 보일 수 없는데 그 친구에게는 나의 허물과 잘못을 능히 말할 수 있다. 그 친구도 나에게 똑같다. 대화를 통해서 잘한 것은 서로가 기뻐해 주고, 잘못한 것은 질책보다는 위로와 함께 달리 생각해 보라는 유연한 조언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두 사람끼리 간직한다. 

이제 내 나이가 48살이고 그 친구도 이제 40이다. 그래서 농담 삼아 같이 늙어간다면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그 소리마저 힘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바람이 있다면 더욱더 건강하게, 지금보다 더 친구처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흔히 사람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말한다. 

2019년도는 그 말을 달리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멀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자신의 이익이 아닌 마음 가는 대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 아무리 눈에 멀더라도 마음에서 멀어질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2019년도가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살면서 이런 친구를 옆에 두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 번 더 나의 바람을 말하라면... 

힘들게 열심히 일하다가 그 친구가 나를 가끔씩 찾더라도 편히 쉴 수 있고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남고 싶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서 바라는 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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