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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Apr 07. 2021

차별, 가진 자의 거만하고 오만한 행위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 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글을 쓰고 저장만 해 두었는데 지나고 나니 공개할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장해 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잘 살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한창 불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은 말과 달리, 보이지 않는 힘이 있죠. 글이 남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때론 역으로 나를 공격하기도 하죠.

그래서 머릿속에 담아뒀던 수많은 이야기를 브런치 서랍에 저장해 두었다가 오늘에서야 정리를 하고, 다시 글을 써 봅니다.


오늘은 차별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려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차별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죠.

저를 보더라도 다양한 차별 속에서 살아온 것 같아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적어도 수차례 차별을 겪어 봤으리라 봅니다.


차별도 여러 가지 차별이 있죠. 인종차별, 성차별, 신체 차별, 나이차별, 학벌 차별, 국내파 차별, 지역차별 등등...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그 다양성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배우지만, 생활 속에서의 차별은 당연해 보입니다.


물론 차별을 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는데, 140cm의 키가 되지 않으면 아이가 놀이기구를 탈 수 없을 때가 있죠. 이런 차별은 만일의 사고에 대한 예방조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차별인 것이죠. 이것은 분명하게 차별에 대한 원인이 공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에 굳이 차별이라고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2cm가 부족해서 놀이기구를 타지 못해 서운해하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딸아이 입장에서는 키로 인한 차별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별을 느끼는 아이라도 왜 탑승을 못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잘해주면 충분히 수긍하고, 일종의 규칙으로 받아들입니다.

수긍하고 규칙으로 인정하면 그것은 차별처럼 보이나 더 이상 차별이 아닙니다.


반면, 수긍하지 못하고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차별이 세상에는 더 많습니다.

남녀평등을 외칠수록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차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나이나 외모, 그리고 혼인 여부에 대한 차별이 없다지만, 의외로 나이나 외모, 혼인 여부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서 차별을 두는 경우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지나친 개인적 생각일 수 있지만, 내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차별은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 보입니다.


한 기혼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여성보다 늦게 직장에 들어갔지만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며 제대로 일을 하며 인정받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상사가 부임하자 그 여성은 늘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일이 그 여성에게 미뤄지고 날로 힘들게 지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공사구분하는 태도나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따지는 모습이 원인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직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친 태도가 아니라면 과연 큰 문제가 될까요? 그것이 문제라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더욱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버거워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려 합니다. 이직을 하려 하니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첫 번째 모집 공고에 원서를 넣었지만 "해당자 없음"으로 그 어느 누구도 서류 합격이 되지 않았죠. 그렇게 고배를 마시고, 한 달 동안 온갖 눈치를 보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곳에서 재공고가 떠서 다시 지원을 하였습니다.
재공고가 난 응시 시험에는 운이 있었던지 1차 서류 통과 2차 면접 통과를 하게 됩니다. 그동안 실적을 보더라도 당연히 뽑힐 수밖에 없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모든 면접 심사위원들의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롭게 이직할 조직의 가장 높은 사람의 허락을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흔히 이를 "재가"를 받는다고 하죠.

그런데 결과 발표일이 되어 게시판을 열어보니 "해당자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면접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그 여성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보통은 면접을 최우수로 통과하면 당연히 합격인데 불합격 통보는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면접관(심사위원들)들이 모두 합의하여 선발되었음에도 불합격이라니... 심지어 합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터라... 더욱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저 힘없이 그 여성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한동안 보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 여성의 심리는 카오스 그 자체였을 것이라 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찰나에 송두리째 빼앗긴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그녀는 큰 상심과 함께 심적 고통을 안고 전처럼 차별이 가능한 조직에서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그녀가 떨어진 이유를 전해 듣게 됩니다.
합격의 장까지 발을 들여놓고도 떨어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고 합니다.  
조직의 가장 높은 사람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면접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모두 물린 셈이죠.

그 뒤로 시간이 지나 얼마 전에 새롭게 인재를 채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능력과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조직의 높은 분께서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두 번의 공고에 재응시하여 꼭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여성은 한동안 크나큰 심적 고통에 시달리며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모든 심사위원들의 동의 하에 면접을 통과해 놓고 떨어진 것도 큰 충격이었겠지만, 떨어진 이유를 당사자가 직접 듣게 되어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예 이유를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적어도 차별을 하려면 소리 소문 없이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 생각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면서까지 상대의 심적 고통을 가세하는 것은 신사적인 행동이 아닐 테죠.

물론 고의가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말을 아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거만과 오만으로 가득 찬 인성을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은 차별은 크게 두 가지 경우에 발휘됩니다.

조직을 이루어 힘이 생겼거나

또는 기득권을 가졌거나...

즉 가진 자나 단체가 주로 행하는 행위가 차별입니다.


사회는 평등을 바라지만, 여전히 인간의 기저 심리는 가진 자의 행위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차별을 함으로써 자신이 남보다 더 돋보이기 때문이며 심적으로 이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 힘이 점점 더 커지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패의 모습을 닮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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