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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Sep 02. 2021

애나 어른이나 집단 이기주의

노조원들 때문에 모 지점장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왜 꼭 자살했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이기 전에 그저 짜증이 앞섰다.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알 법하기에...


애나 어른이나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공동의 타깃을 향해 쏟아내는 이기주의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단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구성원들의 목적에 있다.

집단을 이루려는 목적은 힘을 가지기 위함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 지고 싶은 마음이 서려 있다.  함께했기 때문에 자기가 독박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 속 마음에서 엿볼 수 있다.

외면상으로는 힘을 위해 모였지만, 내면 속 마음은 늘 비겁함이 함께 한다.

힘은 쓰고 싶으나 힘이 약해서 집단을 통해 힘을 부리고 싶어 하고, 힘을 쓰더라도 자기 자신은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생각이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 집단이기주의,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욱더 심해지는 듯싶다. 아니 어쩌면 코로나는 변명일 것이다. 이렇게 된 지 이미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상은 어린아이들에게서도 잘 엿볼 수 있다.

학내에서 누군가 예쁘고, 똑똑하거나 자신보다 더 나은 아이가 있을 때, 자신과 비교가 되어 미워질 때, 같이 함께 미워하는 동급생들을 모아서 집단을 이루고, 어느새부터인가 상대 아이를 계획적으로 괴롭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건 발달은 질투에서 출발한다.


나보다 더 잘나서 짜증 나서,

나보다 더 잘하는 게 싫어서,

그리고 건방지게 행동해서,


특히, 괴롭힐 때 죄책감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아이들끼리 집단을 이뤘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든지 책임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혼자가 아닌 함께 했기 때문에 집단 모두가 옳은 행동을 한 것이라 생각하여 전혀 잘못이 없다고 인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집단이 발휘하는 이기주의는 집단을 구성하는 모든 인간들이 공통된 사상이자 이념이 될 수 있다.


방금 전 앞에서 원인인 질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건방지게 행동해서'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언급하자면, 이렇게 말한 사람은 순전히 자신의 잣대에 기준한 판단이며, 동시에 그날 기분에  따라 남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단순한 폭력적 행태이다.







집단을 이뤘다는 사실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고, 때론 집단행동이 매우 값진 결과를 얻기도 한다. 반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집단에 반하는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는 책임감 없는 무서운 배척만 남을 경우이다.


일개인의 잘못은 능히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집단의 잘못은 오히려 가끔은 거짓이 진실되는 경우가 있어서 쉽게 교정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다. 한 아이가 집단 따돌림을 받아서 가해자를 처벌했다 해도 집단의 힘이 크기 때문에 주변인들도 개인보다는 집단에게 손을 들어주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단적인 예로 집단 구성원의 가해자의 경우, 처벌을 받았을 경우, 그 가해자는 법적 책임을 다했다 생각하고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왕따나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가 계속해서 피해자로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이 집단 이기주의를 발휘하는 것일까?

필자의 사견으로는 집안 교육이 그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에 팽배해진 내로남불 의식과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 사고가 더해져서 그 심각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하자면, 나의 딸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1학기 때 문제가 있었다. 또래의 아이보다 사고력이나 언어구사력 등이 빨랐던 딸아이는 동급생 아이들과 적잖이 문제가 있었고, 남들보다 우세에 있음을 자각한 딸아이는, 쉽게 말해서, 다른 아이들 앞에서 대장 놀이를 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학교 상담을 받았고, 집에서도 아이의 잘못에 대해 매우 크게 훈화한 적이 있다. 그리고 현재는 자신의 잘못을 잘 깨닫고 동급생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딸아이의 행동은 그대로 주홍글씨처럼 남아서 뒤늦게 2학기가 되어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딸아이를 문제아로 보고 있었다. 부모로서 그 마음은 솔직히 이해를 한다.


방과 후 수업으로 한자 수업을 좋아해서 방과 후 수업을 신청했는데, 하루는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요지는 예전에 문제가 되었던 아이의 어머니가 딸아이를 언급하면서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화를 몇몇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요즘같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경우, 어머니들끼리 소통하면서 적어도 내 딸아이를 언급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딸은 아빠인 내가 육아를 하고 있어서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교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이 전무하다.


결국엔 그 전화를 받은 나는 딸아이의 한자 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포기하지 않으려 했으나, 포기하지 않으면 딸아이가 또 다른 형태의 집단 이기주의의 피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방과 후 수업으로 수입을 받는 방과 후 선생님을 생각할 때 딸아이 한 명을 지키면 여러 학생들을 놓치게 될 것을 알았기에 포기하였다.


얼핏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 잘못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야 나름 정당하게 응징받는 것이라 볼 수 있을 테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에 문제의 가해자가 일개인인 딸아이 혼자였고, 지금은 집단을 구성해서 딸아이의 한자수업을 못 듣게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당시 아이가 잘못하여 학내 상담원에게 상담까지 받게 하였으며,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아이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알고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해당 학생에게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였고, 지금은 그 친구들과 전혀 문제없이 좋은 동급생으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노력해서 변했음에도 여전히 피해를 본 아이들의 학부모는 그 사건이 응어리로 남아서 기어이 딸아이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이다. 나도 아이를 가진 학부모라서 그런 심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학교에서 해결하지 않고 굳이 부모가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게다가 적어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로 따졌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시간을 두고 한참 뒤에 지난 일을 끄집어내어 집단으로 대갚음을 한 것을 보고 많이 놀란 게 사실이다.


아이의 문제는 아이가 의사결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어른들이 집단을 이루고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 현실에 사는 애나 어른 모두가 책임은 지기 싫어하고 집단을 이뤄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 정말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서려면 그들의 행동이 바보스럽고 유치한 행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계기 밖에 없다. 그래야만 집단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집단을 이뤄서 공동으로 누군가를 공격했을 때, 그 행동이 다른 주변으로부터 동의를 얻게 되면 힘이 강해지겠지만, 혐오와 멸시를 받는다면, 집단을 이룬 구성원은 자신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위선적인 행동을 하며 집단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론적으로

집단을 이뤄서 책임은 덜 지고 자기가 원하는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

집단이 멸시를 당해서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서 떠나는 사람... 모두가 위선자인 셈이다.

어쩌면 가정에서의 교육부터 사회에 팽배해진 분위기가 이미 위선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뉴스에서 알려준 사건...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떤 다른 이야기로 서로 공방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집단을 이루어 싸울 때 같은 처지인 을끼리 싸우지 말고 갑을 향해 반기를 드는 것이 더 올바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도 그 집단은 모 지점장이 갑으로 생각했을까?

필자가 볼 때는 장이라는 타이틀과 다른 사람들보다 달리, 대리점을 운영할 정도로 자금 운영력이 있었을 뿐이라 보는데,,,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하고, 늘 재정에 대해 스트레스받고, 그렇게 좀 더 응당한 대가를 받는 것인데...  하긴 같은 밥 상머리에서 밥을 먹을 때, 누군가의 밥그릇에 담긴 쌀밥의 양이 좀 더 많아 보일 때, 그것만으로도 불만이 생기는 법이긴 하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분노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감성적인 자신의 생각만 앞세우며,

오직 분노를 통해서

자신의 폭력적 성취감만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이런 짓을 흔히 바보짓이라 배웠다.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정작 그런  짓이 바보짓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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