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가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전에 해보지 못한 것을 해야 하는 시점. 그리고 그 시점에서 다시 배우고 숙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자괴감에서 모멸감까지 느끼곤 한다. 또 어떤 이는 리셋된 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처음이 결코 처음이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사실 누구든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당혹감이 드는 감정은 그 감정 앞에 극복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어린아이들, 청소년을 지켜보면 당혹감보다 당연히 해야 하는 도전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사회경험을 하면서 스스로가 만든 자신만의 이미지 잣대에 자신을 두다 보니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자신만의 이미지 잣대는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오차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정도면 멋져 보이겠지?
나는 이 정도는 하니까.
나는 사회적으로 이 정도로 인정받으니까.
전혀 멋져 보이지 않고,
그 정도는 누구나 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사실 인정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다.
남들로 인정받았을 때 그 순간을 사람들을 늘 간직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이 최고치였기 때문에 잊기 싫어하기 때문이며, 그 순간을 이용하여 자신을 내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은 모습
'내가 누군지 알아?'가 아니라 '저는 누구입니다'가 맞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외치는 사람은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 속에 갇혀서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받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두 가지 유형은 사람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잘 나가든 잘 못 나가든, 출세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다 존재한다.
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처음부터 해야 할 때 당연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차원에서 낯선 용어에서 낯선 환경이 꽤나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극복하는 시간 차이가 달라지며, 그 결과 또한 달라진다.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동안 살면서 배운 자신만의 문제 해결능력이 연결될 때까지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이었지만, 오히려 뒤늦게 찾은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