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홍을 생각하며
나는 겸손과 겸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공손홍에 대해 언급한다.
사마천이 쓴 공손홍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적잖이 나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나이 마흔에 학문을 알게 되어 뒤늦게 학업에 매진하였고 그의 나이 예순에 정계에 입문했다 한다. 이후, 왕의 총애를 받아 승상까지 올랐던 인물이라 한다. 더군다나 당시 승상에 올랐던 사람들은 주로 제후였는데, 제후가 아닌 인물이 승상이 되었으니 가히 파격적인 인사였을 것이다.
사마천은 공손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공손홍은 겸손하고 겉으로 너그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음흉하고 시기심이 많았고, 자기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에게도 겉으로는 친한 척했지만, 반드시 그를 보복했다고 전하고 있다. 동시에 밥상에는 고기를 한 가지밖에 놓지 않았고 현미로 밥을 지어먹었으며, 한편 옛 친구나 친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있는 재산을 모두 털어 도와주었으며, 그런 이유로 그의 집에는 재산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음흉하고 시기심이 많다고 언급했지만, 자신의 재산을 털어 남을 돕는 사람에게 음흉하고 시기가 많다는 말이 왠지 억지스러워 보였다.
내가 볼 때는 학문에 대한 욕심, 당시 종묘사직을 위한 올바른 길을 위해 애썼던 사람 같은데, 공손홍과 반대 성격인 급암의 직설적인 모습이 맘에 들어서였을까? 사마천은 아마도 공손홍보다는 급암에 대해서 좋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긴 공손홍이 승상 자리에 있을 때, 당시 사마천 나이 20세였는데, 빈틈없고, 분명하고, 까칠한 노인이었던 공손홍 보다는 정의롭게 보이는 급암이 더 맘에 들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누가 글을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글의 방향은 천차만별이지 않을까?
설령 공손홍이 음흉하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사마천의 글을 떠나서, 나는 공손홍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그의 겸손을 높게 치고 싶다. 현명하고 똑똑한 그만의 겸손함이 자기 나이 80세 병사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살 수 있었던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시 공손홍은 급암이라는 인물의 직설적인 비판까지 겸손의 말과 겸손의 어조 그리고 겸손한 행동으로 오히려 그가 옳다고 역으로 인정을 했으니 이는 보통의 내공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불혹의 나이가 넘고 이후 늦게 정계에 입문하면서도 그 간의 경험을 바탕한 겸손이 그에게 있어서 큰 무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떤 그룹이든 같은 연령대가 아닌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룹에 소속될 때는 대부분 경계를 한다. 그 경계를 허물고 이겨내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늦게 들어갔어도 겸손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위치를 잘 인정하는 거야 말로 남들의 시린 경계의 시야를 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공손홍은 그 점을 잘 알았기에 평생을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늦게 뜻을 이룰수록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