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정부와 기업들이 워라벨을 외쳐댄다.
워라벨, 일과 삶의 균형( Work-lf balance)이라는 뜻으로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데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원어의 첫 자를 따서 우리나라에서 워라벨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2017년 7월에 '일 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 혁신 10대 제안'을 발간했는데,
정시 퇴근,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업무 집중도 향상, 생산성 위주의 회의, 명확한 업무지시, 유연한 근무, 효율적 보고, 건전한 회식문화, 연가사용 활성화, 관리자부터 실천 등 10가지 개선 방침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연구직은 워라벨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지인의 직장 생활을 들은 적이 있다.
일반적인 기업과 달리 연구직은 매우 그 본질적 특성이 틀린 듯보였다.
하긴 연구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특성상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 본다.
연구란 일반적인 업무와 달리 장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해야 결과를 얻어내는 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직업군과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내세운 근무 혁신 10대 방안이 무색할 정도로 잘 지켜지지 않으며, 조직 내에서도 유명무실하다고 한다.
정시 퇴근,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수시로 떨어지는 업무지시와 마치 무에서 유를 찾아야 하는 업무로 인해 퇴근은 늘 야밤이다.
물론 정시에 퇴근하는 연구원이 있다고 한다. 저녁 회의가 있거나 아주 똑똑한 연구원이나 그리고 일이 없는 연구원이다. 연구하라고 채용했는데 일이 없다라,,, 일반 시민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자제라는 말 때문에 윗 상사는 공적인 것이라 칭하며 수시로 업무를 지시한다.
자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싫다.
자제라는 말 대신에 금지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업무 집중도 향상,
일을 집중해서 하려고 하면 갑작스러운 회의를 소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다.
윗선은 매일같이 급하다고 한다. 그리고 윗선은 단 1시간 안에 2~300페이지 보고서가 나오는 줄 안다.
업무 집중도 향상을 위해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업무 집중이라는 뜻을 모르나 보다.
생산성 위주의 회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회의는 하루에도 수시로 있고 수시로 상위 기관에 불려 간다고 한다.
윗선과 상위기관은 연구원들을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 생산성 있는 행위라 생각하는 것 같다.
명확한 업무지시,
회의하자고 모여 놓고 한다는 소리가 자기 신세타령이라고 한다.
명확한 업무는 연구원 스스로가 이해를 해서 준비해야 한다.
때론 윗 상사가 이해를 못 할 것을 대비해서 명확한 업무지시를 대신 만들어 준다고 한다.
유연한 근무,
연구직은 근무가 유연하다. 그리고 유연한 동시에 지나치게 긴 근무를 한다.
유연하다는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고무줄처럼 늘릴 것에만 유연성을 부여하나 보다.
효율적 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효율적 보고는 윗선에서는 신뢰하지 않는다. 우선 그들은 효율적 보고를 받아본 적도 없고 해 본 적도 없다.
아직까지 다량의 보고서를 옆에 두고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청문회 하듯이 일일 가르치는 보고가 윗선에게는 효율적인 보고인 것 같다.
건전한 회식문화,
회식문화는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꼭 회식 때마다 남자끼리,,, 여성끼리를 나누며 시작한다.
여전히 예전의 회식문화를 선호하는 윗선이 있다.
미투 때문에 조심하지만, 남자들끼리는 여전히 예전의 회식문화를 소중한 전통처럼 보존해 나간다.
연가사용 활성화,
연가사용은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한다. 하지만 처리할 일이 많은 경우 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연가를 쓰는 기간에 급한 회의나 업무가 잡힌다.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관리자부터 실천,
관리자부터 입으로 실천을 한다.
윗선과 상위기관에서 실천하지 않으니 눈치 보여 함부로 실천할 수가 없다.
말로는 실천을 외치지만, 실천하면 어느새 가시방석이 된다.
워라벨을 통해서 효율적 업무를 이루는 이상적 설계는 하였지만, 정작 워라벨은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는 꿈과 같은 이상적인 단어일 뿐이다. 점진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기관들이 여전히 뒤늦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자유를 주는 대신에 결과가 혹독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워라벨을 하게 되면 개인이 가지는 자유시간이 많아진다. 즉, 일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업무 진척도가 반대로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토요일, 일요일을 잘 쉬고 연구원에 출근하면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사람을 찾고, 일 진척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건 완전무결 울트라 순수 그 자체 갑질이라 본다. 문제는 자신의 그런 모습이 갑질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자기는 열정적으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길들이는,,, 그런 방법,,,
필자는 나이가 있으니 그런 경험을 많이 받아봐서 잘 알고 있다.
만일 국가가 국민의 워라벨을 원한다면 두리뭉실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법적으로 명확하고 면밀하고 엄격한 단어 선정이 필요하리라 본다.
아마도 개인적 생각으로는 10년 후쯤 되면 지금까지 갑질에 익숙한 윗선들이 세대교체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갑질에 익숙한 윗선 밑에서 배우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더 심하게 갑질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이기도 하다.
순수하게 개인적 바람이지만
이타적이지 않고 말뿐이며, 갑질 선호적인 인물들을 인사에서 필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좀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