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일을 한 지 15일 정도 되면서 전에는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 듣는 용어들, 일하는 사람들 간의 모습들, 다양한 일거리들...
늘 책상머리에서만 일을 했던 나로서는 새롭고 낯선 경험들이었다.
그래도 일하면서 느낀 소감은 이 일은 할만하다이다.
솔직히 처음에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길이었지만, 이 또한 적응하다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오후 일찍 4시경에 퇴근하니 오히려 하루가 좀 더 여유로워진 느낌도 받았다.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했다.
일용직, 흔히 잡부라고 불리는 데, 여기서는 농담 삼아 '개잡부'라고들 한다. '개좋아'에 사용하는 '개'와는 다른 의미이다.
비산먼지막 설치에서 경계선 설치, 청소, 화재감시자, 신호수까지
기술직이 아닌 모든 일을 도맡아 일을 했다.
안 그래도 주위에서 나보고 비꼼을 담아 농담 삼아 웃으면 한마디 했었다.
"주종목이 머래~~, 아따 만능이여 만능~"
그냥 웃고 지났다.
어쩌면 개잡부의 '개'가 개좋아의 '개'처럼 '크다, 많다'의 의미일까?
가장 힘들 일은 삽 들고, 오함마 들고 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신호수가 가장 힘든 일이었다.
물론 신호수도 신호수 나름이다. 어디에 배치되었냐에 따라 누군가는 편하고, 또 누군가는 반대로 힘이 든다.
토목 현장에서는 의외로 많은 신호수가 배치된다.
- 토사를 싣고 출차하는 지점에서 관리하는 신호수
- 길 중간에 배치되는 신호수
- 차량이 많이 오가는 교차로에 배치되는 신호수
- 토사를 내리는 지점에서 관리하는 신호수
- 다시 토사를 실기 위해서 되돌아오는 지점에서 덤프트럭을 체크해야 하는 신호수
이처럼 적어도 4~5명의 신호수가 필요하며, 오가는 길이 복잡할수록 판단에 따라 신호수가 증가될 수 있다.
이 모든 신호수 역할을 해 본 결과, 가장 힘든 신호수는 가장 멀리에 배치받은 신호수였다.
하루는 현장 작업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신호수로 배치받았는데, 현장에서 약 3~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 배치받은 이유는 덤프트럭으로 흙을 나르는 데 도착 지점의 교통 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근에 인가가 있고, 오기는 차가 많다 보니 원활한 교통 흐름을 관리했어야 했다.
혼자서 오가는 트럭과 일반 차량을 통제하다 보니 한 순간도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근히 발목과 무릎에 상당한 무리가 가해진다. 그냥 서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시간의 흐름이 이토록 느린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이곳까지 자가용이 없다면 올 수 없다는 점인데, 특히 점심시간이 조금 촉박해진다. 자동차로 대략 6~7분 거리지만 오가는 차량이 많다 보니 중간중간에 있는 병목지점을 통과하다 보면 대략 15분 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대충 밥을 먹더라도, 대략 40분 정도가 소요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성을 이해해 주거나 하는 환경은 아니다.
또한 퇴근시간이 돼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트럭 때문에 자연스럽게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냥 퇴근해도 된다고들 하지만, 관리감독자가 늦게까지 돌아다니기 때문에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신호수 역할을 하지 못하면, 트럭기사는 물론 지역민의 원성까지 듣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아 이수증을 받으면 신호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총 4시간의 수업 중에 신호수가 언급되는 부분은 1교시 정도에 해당하며, 그렇게 전문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신호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반면, 미국의 경우, 신호수 전문과정이 존재하는 데, 그만큼 건설업 관련 일에서 신호수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듯 보였다.
좀 더 알아보니 신호수와 관련한 유사한 자격증이 있는 나라는
미국의 플래거 자격, 호주 및 캐나다의 교통 통제 전문가를 위한 공인 교육 증명서, 그리고 영국의 도로공사 교통 인도자 인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신호수 역할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위험성이 많은 일일수록 신호수의 역할과 의미가 클 수 있겠다는 것을 생각했다.
일단 신호수는 '안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만큼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지역민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셈이다. 이 모습을 ESG관점에서 고민해 보면,
신호수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인 이해관게자와 지역민이라는 간접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또 하나의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같이 일하는 다른 신호수는 하루는 지역민의 불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 지역에 사는 시민들을 먼저 통과시켜 줘야 하지 않냐는 이유에서다.
아마도 계속해서 줄지어 지나는 트럭들이 속도를 내어 지나다 보니 위험해서 일반 차량을 세웠는데 아마도 시간 지체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건설현장에서의 이런 통제가 쉽지 않은 이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선 흙을 싣는 시간이 다 다르고,
퍼다 나르는 시간도 다르며,
운전자의 운전 방식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 더해 하루에 채워야 할 목표량에 따라 오가야 하는 횟수 또한 다르다.
물론 기계적으로 통제는 가능하겠지만, 흙을 퍼 나르는 시간과 거리 모두가 비용이다 보니 업체에서는 계획된 통제보다는 지금처럼 작업자의 역량과 경력에 의존하여 하루 목표량을 달성하려는 듯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적 통제는 출차하는 시간을 통제하고, 운행시 정해진 속도에 따르게 하는 것)
고작 신호수 하면서 너무 깊게 온 듯 싶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현장은 늘 위험하고, 변수가 많으니, 안전한 현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