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상호 간 이루어지는 소통은 일의 진행과 성과를 더불어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소통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 문제는 용어 문제는 아니다. 은어처럼 사용하는 흔히 노가다(막일) 용어는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금방 체득되기 때문에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잘 못 알아들으면 오히려 웃으면서 서로 이해해 주며 적응해 나간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 지시이다.
같은 한국말인데 지시하고 지시받는 사람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로 인해 현장에서 수없이 고성의 목소리가 오간다.
소장이 지시를 과장이나 대리가 확인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이해해서 사달이 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렇다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되물으면 더 혼나는 경우가 많다. 방금 전에 한 말을 이해도 못 한다고....
단적인 예로 흙을 쌓아 오린 부분에 비산막이천을 둘러야 하는데,
소장은 자신의 손으로 위치를 가리키면서 여기서 저~기까지 설치하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과장은 일용직에게 여기서 저기까지 설치하세요라고 말한다.
일용직은 여기와 저기 지점이 헷갈려서 사진을 찍어서 여기서 저기까지냐고 확인을 했다.
과장은 아니라면 여기서 저기까지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일용직 두 사람이 열심히 오전 내내 비산막이천을 설치했다.
그런데 잠시 후 소장이 와서 왜 이렇게 설치했다며 언성이 높아졌다.
과장에게 들은 이야기대로 설치했다고 하니, 소장은 과장에게 무전기로 고성을 지른다.
과장은 뛰어왔고, 이어서 소장과 과장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결국엔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일용직 직원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좀 그랬다.
과장도 우리에게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직접 정확하게 지시받은 일이라 우리 보고 어쩌질 못했다.
오가는 고성이 듣기 싫어서 그냥 바로 정정하겠다고 말하며, 소장이 시킨 범위를 재차 확인하고 다시 투입되어 해결했었다.
이런 일이 정말 많은 게 현장이다.
주로 고성이 오가는 이유는 지시의 오류에서 발생하는 데, 크게 다섯 가지의 심리학적 문제로 생겨나는 구조적 커뮤니케이션 문제라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전달과정의 왜곡 / 지식의 저주 / 심리적 안전감 부족 /
귀인오류 / 높은 인지 부하
소장에게서 과장, 과장에게서 일용직으로 전달될 때 단계를 거칠수록 의미가 변형되는 현상이다.
이를 심리학에서 직렬 전달 왜곡(serial transmission error)라고 한다. 사람은 들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자기 해석을 덧붙여 재구성한다는 말이다. 특히 지시에 있어서 여기저기는 주관적 인지가 포함되는 만큼 여기와 저기의 의미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지도나 사진을 꺼내어 제대로 된 지시가 요구된다.
그리고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이다.
지시하는 사람은 '이 정도면 당연히 알겠지'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본인은 전체 도면과 맥락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 맥락을 공유하지 못한다. 이 차이를 심리학에서는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소장은 '분명히 저쪽 사면까지라 했잖아'라고 느꼈겠지만, 받는 사람은 그 '저쪽'이 어디인지 확인이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위계적 조직 상황이다.
현장 문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으로
질문하면 혼난다. / 되묻는 것은 무능처럼 보인다 / 빨리 알아서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의 부족 문제라 한다.
이런 부족 문제로 질문을 막는 문화가 오류를 키우게 되는 데 흔히 볼 수 있는 현장 모습은 다음과 같다.
질문이 줄어듦
확인이 생략됨
실수가 증가함.
대신 고성이 증가함.
일반적으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상, 핀잔을 주는 대화이다. 쉽게 말해서 남 탓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 문제는 지시가 모호했거나, 전달 과정이 불완전했거나, 확인 체계가 없었거나 인데, 상대 사람의 무능을 돌려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흔히 직위로 찍어 누를 때 많이 볼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의외로 지시 내리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하냐”
“왜 일을 그따위로 하냐”라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이런 상황 문제를 다른 데서 명확하게 찾기보다는 그냥 개인 능력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한다. 즉, 문제는 다른데 있는데 그냥 가장 간편한 문제 원인을 상대에게 있다는 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인지 부하(Cognitive Load)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오히려 최말단에 위치한 일용직에게 많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장은 소음, 시간 압박, 동시 다발 작업, 안전 위험 등이 존재하는 공간인데, 이 상태에서 인간의 작업 기억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추상적인 지시인 여기저기는 더 쉽게 오해를 유발케 한다.
이제까지 총 5가지 심리적 요인을 살펴봤는데,
문제는 조직 내 의사소통을 바로 잡지 않으면 계속해서 문제가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소장이 과장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과장이 대리에게, 대리가 일반 사원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이다.
역으로 봐도 사원은 대리에게, 대리는 과장에게, 그리고 과장은 소장에게 할 말만 하고 더 이상의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계적 조직 성격이 강한 현장에서의 질문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건설 현장처럼 위계가 분명한 조직에서 질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분위기를 좋게 하자"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안전, 성과, 재작업 비용을 줄이는 구조 설계 문제이다.
시간 압박, 안전 위험, 다단계 지시 구조가 겹쳐 있는 현장의 경우 질문 억제 문화가 곧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좋을 것 같다.
지시 후 반드시 말하기 :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바로 물어보는 게 책임이다
질문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 확인 잘했다. 이런 게 사고 막는다.
폐쇄 루프형 질문을 통해 반복 확인 구조를 강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장이 여기서 저기까지 설치해라고 지시했다면, 그대로 끝나지 않고 다음과 같이,
A지점에서 B사면 상단까지 맞습니까?(사진이나 지도를 들고)
이처럼 재확인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위계 조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되물으면 혼난다”는 경험이다.
그래서 규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예: “작업 전 1회 확인 질문은 의무” “질문했다고 불이익 없음”
이걸 말로만 하지 말고 조회·안전회의 때 공식화해야 한다.
현장은 추상어가 많다. '여기, 저기, 조금, 많이, 대충, ' 이건 사고의 씨앗이다.
도면에 표시를 하거나 스마트폰 사진에 표시하거나, 좌표, 거리, 높이를 수치화하는 시각화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자신의 지위 보호, 책임 분산을 본능적으로 한다. 그래서 질문 문화는 단순 소통 문제가 아니라 책임구조 설계 문제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가 잘못?"대신, "어디서 꼬였지?" 식으로 묻는 게 좋다.
여기에 재작업 발생 시 개인 비난은 금지하고, 더불어 자신의 지시 모호성을 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위계 조직에서 문화는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 바뀌는 법이다.
만일 소장이 이렇게 말한다면 순간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 본다.
"내가 애매하게 말했네, 다시 정리하지."
어쩌면 이 한 문장이 10번의 안전교육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언성이 높지 않은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전달이 가장 우선 일 것이며,
적어도 제대로 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 함께 일을 같이 하다 보면, 거시기하면 그 거시기가 그 거시기라 쉽게 이해한다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제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라 쉽게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 업무와 같이 복잡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환경은 다르다.
그러므로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서 정확한 문장 구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확인 절차를 더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