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식사라고 말하면
가족 모두가 오순도순 모여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서로를 위하며 맛나게 먹는 모습이 가장 많이 떠 오른다.
그리고 이런 행복한 가족식사는 사람이 살면서 인생의 척도로도 반영할 만큼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좋은 개념의 가족식사가 과연 자연스럽게, 이타적이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먼저 답을 해 보자면, 그런 식사자리가 있었고, 그리 흔하지는 않다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자면, 가족 식사가 이루어지는 평일 오전과 저녁시간, 그리고 휴일에는 오전, 오후, 저녁, 모두였다. 평일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어머니의 재촉으로 일어나 양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을 먹었고, 저녁 시간이 되면 동네 친구들과 놀던 것을 멈추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함께 식사를 해야 했었다. 물론 아침밥은 잠결이라 별로였어도 저녁밥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게 맛나고 기분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곰곰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맛나고 기분 좋은 저녁 식사가 가능했던 것은 식사 전부터 이리저리 바빴던 어머니의 노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아이들을 씻겼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손발만 씻고 바로 식사할 수 있도록 시간 내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렇게 준비된 저녁식사.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는 온 가족 그 자체가 삶의 이유가 되어 힘이 되었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저녁식사 메뉴 덕분에 행복했었고,
이런 저녁 차림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어머니는 남편과 아이가 행복해하며 잘 먹는 모습에 뿌듯해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머니의 반복적인 말이 떠 오른다.
오늘 저녁은 뭘 준비하지?
이 말은 지금 나에게도 통용된다.
현재는 예전처럼 한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
아침은 개별적으로, 점심도 각자의 준거집단 속에서 개별적으로, 그나마 저녁 시간이 유일하지만,,,
저녁 시간은 주로 엄마와 아이, 또는 아빠와 아이, 또는 아이끼리 저녁을 한다.
예전과 달리, 삶의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함께 식사를 할 때가 있긴 하다. 바로 휴일일 때... 하긴 주로 요즘은 외식을 많이 해서 가족이 함께 집에서 먹는 경우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먼저 많이 달라진 풍경은 생각보다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식사를 하더라도 대부분 개인적인 면을 지켜볼 수 있다.
식사를 준비하게 되면 누군가는 요리를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만들어 준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자기가 할 일에 충실한 편이다. 그래서 정작 가족 식사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가장 마지막에 식사를 하게 된다.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나머지 식구들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소통을 하지만, 결국엔 마지막에 식사하는 사람은 소통에서 배제되는 경우를 지켜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 가정에서도 일상이다. 그나마 식사를 마치고 난 뒤, 혼자 식사를 할 사람을 위해 배려하기 위해서 자리에 남아 주긴 하지만, 그 모습에 조금은 슬퍼진다. 혼자 먹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지켜보거나 또는 그냥 편해서 식탁에 앉아 있는다고 해도 남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가 솔직히 처량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그냥 무시하고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아마도 그런 모습도 일종의 배려일 텐데,,, 그냥 그 배려를 식사 전에 발휘해 줬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0분에서 길게는 20분 정도 기다려주면 되는데,
배고프다는 이유로 먼저 먹게 된다. 그리고 먼저 식사를 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은 원활해진다. 반면, 요리를 하고 돌아서서 이제야 식사를 하려는 사람은 약간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어색함을 줄여주기 위해서 앉아 있는 아내가 있지만, 때론 오히려 불편감을 느낀다.
마치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늘 부족하고 늘 모자란 사람 위치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그런 느낌을 가진다. 이런 감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역으로 그 입장이 되면 그렇게 좋은 기분은 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식사는 오래전부터 급을 나눴던 문화였다.
먹는 것으로 차별을 이용했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행태가 바로, 귀족과 노예 간의 사이에서의 식사 모습일 수 있다.
귀족이기 때문에 다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노예는 동등할 수 없기 때문에 다 먹고 남은 음식을 한 구석에서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우리나라 옛 모습도 비슷하다.
심지어 현재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급수를 나눈다.
그리고 행복한 가족 식사가 가능했던 것은 가부장적인 시스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한 가족 식사의 중심은 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을 상기시키고 유지시켜 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아버지의 가부장적 시스템을 지탱할 수 있게 지지해 줬던 어머니였다.
아이에게 믿음의 주체였던 어머니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통솔케 하고 그런 시스템은 확고하여 저녁만 되면 자연스럽게 행복한 가족 식사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개념의 관점을 개인에 돌리면, 과연 그 모습이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가족에서 배우는 매우 중요한 과정일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배운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위치가 되면 오히려 잘못된 모습으로 인정받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식탁에서의 모습이 지금 시대 반영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한 가족식사 시간,,,
오래전부터 진정한 행복한 가족식사 시간은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 진정한 모습은 모든 가족이 공통의 일을 하거나 공동의 주제를 가졌을 때이다. 이도 아니면 정말 가족들이 서로서로가 너무 사랑해서 가능할 수 있겠다.
즉, 함께 살며, 일하며, 먹으며, 그 속에서 성취감도 가족이 함께 느낄 때만이 행복한 가족식사의 올바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대표적인 시대를 꼽자면 사냥과 수렵을 하던 시대와 농경시대가 대표적일 것이다.
또는 대부분 누군가의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족식사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현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족이 함께 해결할 일이 줄어들게 되고, 동시에 각자의 활동 영역을 가지게 되고, 그 속에서 각자의 성취감을 이루며 살다 보니 공동으로 함께 소통할 거리가 점점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음식 문화는 내가 어떻게 교육을 받았냐에서 출발한다.
그래도 한 가지 식사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공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행복한 식구식사 시간?
요즘 현장 일용직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하루는 용접사들이 모여 퇴근 시간 전에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발견했다.
야~ 오늘 저녁 메뉴로 뭘 먹냐?
그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함께 있던 사람들은 먹는 것에 공감하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나눈다.
그리고 실제로도 용접 팀의 구성원은 저녁 메뉴를 고르며 함께 식사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시간이 오후 4시경, 일이 지겹고 힘겨워질 시간이다. 그들에게 힘들게 일을 하고 함께 식사하는 멤버들과 하는 시간이 매우 행복한 시간인 셈이다. 그들은 가족이라고 불릴 만큼 함께 한 사람들로 엄밀히 말하자면 가족이라기보다는 식구일 것이다.
집에 와서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쩌면 행복한 가족식사 시간은 어렵더라도 행복한 식구식사 시간은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나부터도 식사는 기분 좋은 사람과 나와 친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나는 가족에게 너무 큰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개념보다 식구라는 개념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럼 좀 더 대등해지고 쓸데없이 기분 나쁠 필요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