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타심

머리가 긴 사람은 사기꾼?

by 공삼

숨을 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라 그런지 남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에 상처를 입긴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아직도?

갑작스럽게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신경 쓸 일이 아닌데, 아니 신경 쓸 가치가 없는 말인데도,,, 아마도 나 스스로가 그동안 많이 위축되었던 거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을 맞이해서 모처럼 지인들과의 자리를 함께 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자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기분 좋은 안부가 이어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잠시 후, 모임의 회장님의 아내 분이 함께 했었다.

우리 지역에서 지역 유지이면서 유명한 예술가로 활동하시는 분으로 우리 모임에 함께 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게 좋은 자리가 이어지고 있는데

사모님이 세상에 가장 믿지 못할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듣게 되었다.


"나는 남자가 머리 길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제까지 내가 만나본 머리 긴 사람들은 사기꾼들이 많아"


순간 "이게 무슨 말이야?" 했다. 왜냐면 그 자리에 머리 긴 남자는 나 하나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 오른쪽 옆자리가 회장님, 바로 그 옆자리에 사모님이 계셨는데 너무나 명료하게 들렸다.

듣자마자 나를 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자리가 있을 때마다 다소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한 공간에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나눠도 나와는 대화를 피하려 하던 모습까지...


"내가 덩치가 크고 키가 커서 가깝게 대하기 싫은가" 보다 정도로 이해를 했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경우는 너무나 허다했기 때문이다. 익숙할 정도로...

내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 외모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나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바로 옆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이제까지 내가 공적이든 사적이든 실례를 범한 적이 없기에 더욱더 마음에 거슬렸다.

그래도 모처럼 좋은 자리라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반응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옆에 있는데 그리 말하는 것은 나의 반응을 보고 싸우자는 의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거나, 적어도 말은 가려야 하지 않을까?

내 상식과는 다소 먼 행동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는 거슬렸지만, 나보다 연배가 많은 분이라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비꼬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다른 회원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모른 척, 못 들은 척, 그리고 그냥 속 좋은 사람인 양 했어야 했다.


전체 인구가 100으로 잡았을 때 머리가 긴 남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만일 믿지 못할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 20%라면, 그 속에 머리 긴 남성은 몇이나 될까?

하긴 100에서 10명이 머리가 긴 사람이고, 그 속에 2명이 믿지 못할 사기꾼이라면 이 또한 20%에 해당된다.

100명에서 20명 보다 10명 중 2명은 개수로는 낮지만 퍼센티지로는 같은 게 세상일지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나머지 8명을 모두 싸잡아서 믿지 못할 사기꾼이라 폄하하는 것은 되레 머리가 길지 않지만 믿지 못할 사기꾼을 옹호하는 셈이다.


그냥 맘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말하면 될 것을 왜 하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이제껏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거나 실례를 범하지 않는 나에게... 하필..

그분의 심리가 조금 궁금하다.

적어도 신사답게, 아니 레이디답게 처신해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내 부모에게 이렇게 배웠다.

좋은 모임 자리에서 좋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배웠다.

문제가 있다면 별도로 불러내서 엄중하고 예의를 갖춰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배웠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내뱉는 말은 공론화되기 쉽고 더 많은 오해를 낳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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