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말의 일일 총량'이 있다
그리고 그건 남의 고막을 갈아 넣어 만든다
혹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몇 마디나 해야겠다” 하고 계획을 세우신 적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마다 “말해야만 하는 일일 총량”이란 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총량을 혼자 소화하지 않고, 남의 고막을 인질로 채워간다는 데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누군가는 하루에 5,000자만 말해도 충전이 끝나는데,
누군가는 하루 5만 자는 풀어놔야 겨우 숨을 쉽니다.
그리고 그 5만 자 중 4만 9,800자는 사실 남이 몰라도 되는 이야기죠.
가끔 있잖아요.
“내가 네 얘기를 들어줄게”라고 한 적 없는데,
내 고막이 대나무숲이 되어 있는 경우요.
점심시간에 김치찌개가 왜 맛없는지부터 시작해서
옆집 개 이름이 왜 ‘뽀삐’인지까지
심지어는 “내 전생은 고려시대 귀족이었다”는 썰까지…
상대방은 점점 신이 나고, 나는 점점 혼이 빠져나갑니다.
마치 내 고막에서 산소를 빼앗아가는 느낌.
문제는 밸런스예요.
세상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 말을 해야 배터리가 충전되는 사람이 있죠. 그들은 말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반면 말을 들으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사람도 있죠. 그들에게 스트레스 해소는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두 사람이 만난다면 우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다는 블랙홀이 탄생합니다.
한쪽은 말해야 살아남고, 한쪽은 들으면 죽어가니까요.
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이 나 죽어가니 그만하라고 하면 상대방은 그것으로 서운해하고 온갖 사유를 달아 더 많은 이야기로 정말 죽이기 시작하죠.
사실, 말을 많이 하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죠.
“내 얘기를 들어줄래?”
“잠깐 시간 괜찮아?”
“혹시 내가 너무 말 많이 하나?”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물어봤다면 이미 당신은 상위 5%의 인간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상대방 = 대나무숲” 공식을 적용하거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말할 자유”와 “남의 귀를 점령할 자유”를 혼동합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어제는 내가 누군가의 대나무숲이었고, 오늘은 누군가가 내 고막을 강탈했죠.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살짝 뜨끔했다면, 지금부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말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로 글쓰기가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의외로 큰 효과가 있어요.
특히 글을 쓰는 동안 머릿속 정보가 정리가 되는 만큼 스스로 해야 할 말과 아닌 말을 구분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화가 더 질적으로 향상되죠.
그런데 문제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글 쓰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 얘기를 들어줘”는 부탁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말의 일일 총량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총량을 남의 평화로운 고막에 무단 투척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사회적 소음공해의 가해자가 됩니다.
그러니 제발, 말할 땐 한 번, 들어줄 땐 두 번 생각합시다.
내 입은 시원할지 몰라도,
상대방의 고막은 오늘도 과로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