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2(월) 일기

by 콩지수

어제는 H를 만났다.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거였는데, 힘든 일이 있었음에도 굉장히 잘해나가고 있는 H를보고 있으니 내가 다 대견했다. 좋은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달라 보였다. 어머니를 향한 존경과 애정이 말할 때 묻어 나오는 게 참 좋았다. 어쨌든, 늦잠 자서 예배를 안 드린 주일이었는데 H와의 만남이 예배 같았다. 서로의 신앙을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서로를 향한 위로를 얻었고, 또 각자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그랬다고 생각한다. 감사했다.

작년 12월 세상을 떠난 H의 동생. 그를 생각하다 보니 Y 선생님이 떠올랐다. 나도 이제 스물여덟 해를 살았다고 몇 번의 죽음,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중학생 때 친했던 J도 있었고, 친할머니도 있었고, 시할머니도 있었고,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마음이 아팠던 L의 아버지의 죽음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은 Y 선생님의 죽음이다. 잊을 수가 없다. 많이 좋아하고 따르던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선교사 같다. 본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상한 분이었다. 글쎄, 나는 선생님의, 선생님이 아닌 모습은 전혀 모른다. 권위적이면서 사랑이 많은 아버지처럼 보였던 거 말고. 본명도 가물가물하니까. 아무튼. 항상 커피를 달고 사시던 분. 밥은 항상 안 드셨고, 배고프다고 하면 뭐라도 사주셨던 분. 선생님의 표정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영어를 사실 잘 못했다. 성실하지도 않았고 머리가 좋지도 않아서, 온전히 이해되는 게 아니면 머리에 남지를 않아서, 선생님이 저번에 알려준 거라고 핀잔을 주신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처음 가르쳐주시는 것처럼 또, 자세하게, 천천히, 나를 무시하지 않고, 내가 잘 이해했는지 살피면서, 가르쳐주셨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셨던 것 같은데, 왜 내 마음에는 이렇게 많이 남았을까. 선생님이 보고 싶다. 내가 결혼한 거 아시면, 진짜 축하해주셨을 텐데. 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다 드리고 학원도 놀러 갔을 텐데. 명절엔 댁으로 선물도 보내드렸을 텐데. 왜 이리 일찍 가셨을꼬. 내 인생에 짙은, 무거운 무언가를 남기고 가셨다.

아직도 그 기도 내용을 모른다. 안 들렸다. 간신히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을 알아들었고, 하나님 잘 믿으라는 얘기만 알아들었다. 나머지는 모른다. 하나도 안 들렸는데 우느라 더 안 들렸다. 약간 화가 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죽어가는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 이상하고 모순되는 것도 알지만, 화가 난다. 그에게 원망의 마음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는 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왜 발버둥도 안 치세요? 왜 화도 안 내세요? 당신 지금 죽어가는 중인 건 아세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그때는 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의 일상을 살아내는데 괴리감이 들어 어지럽기만 했다. 그 감정을, 그때의 감정을 이제야 들여다본다. 오 마이 갓. 피 한 방울 안 섞인 학원 선생님의 죽음이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하는데, H는...

아무튼 어젯밤 선생님 생각에 조금 울었다. 선생님은 멋진 분이다. 난 단 한 번도 그가 교회에 있거나 기독교 얘기를 하거나 하는 걸 보지 못했지만, 죽음 앞에 선 그의 태도에서,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았다. 어두컴컴한 병실에서 죽음이 버거웠던 것은 그가 아닌 나였다. 그는 초연했다. 웃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울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의 초연함에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닮고 싶다. 죽음을 앞둔 나를 찾아온 이를 위해,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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