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몇 번이고 찾아오는 번아웃과 요동치는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싶다
나는 어렸을 적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모순적인 이야기인데 소심한 구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더 자리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희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기에 반장과 같은 수뇌부 자리를 도맡았던 것이다. 마냥 착하기만 한 아이였고, 복도에 쓰레기가 있으면 '쓰레기가 있으니 더러우니까 치워야지'라는 생각보다 '반장이니까, 남이 보니까'라는 이유로 주웠던 적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남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쓰다 보니 YES맨이 되어가고 있었고,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말을 먼저 내뱉기보단 몇 번 생각한 뒤,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나 남이 봤을 때 맞다고 생각되는 점만 입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남에게 시선이 의식되는 순간 모든 것을 내 주관대로 행동하기보다 타인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주체적인 상황판단을 하지 않고 남의 시선과 의견을 예상한 판단대로 흘러가게 되고, 내가 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순간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상황속에서 꾸준했던 점은 궁금한 것은 질문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도전적이었다는 점이다.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열의를 다해 선생님을 찾아가면서 물어봤고, 자연스럽게 열의가 생기면서 공부에도 욕심이 생겼다. 중, 고등학생 때는 하도 수•과학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들이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 아니냐고 왜 교무실에 사냐고' 농담을 할 정도로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에 찾아가곤 했다. 그 외에도 공부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는 것만큼은 집중해서 파고드는 편인 내성적이지만 당찬 아이였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하고 고향을 벗어나 서울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아직도 YES맨이었고, 남들에게 마냥 착해 보이기만을 바라는 아이였다. 특히나 이성에게 말도 걸지 못했던 나는 이성이 있으면 무조건 착한 척을 해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건강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을 하는데 내가 생활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것을 하나씩 해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를 향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나에겐 너무나 막연했고, 도와줄 이도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도 나를 뛰어넘는 도전은 해보고 싶었기에 '지금 내가 빠르게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고민하던 끝에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장사도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도 보수의 끝인 성인용품, 콘돔을 팔아보기로 했다. 콘돔을 팔아보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고, 이유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쉽진 않았지만 준비하고 시도해본 시간만큼은 너무 즐거웠다. 성공에 집중하기보다 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인생의 큰 동기부여가 되면서 자존감도 올랐다. 나는 그렇게 도전적인 청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나는 원체 운동을 좋아하고, 한계 극복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20살 여름이 되자마자 인천-부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국토종주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2년 뒤, 아버지와 남동생을 이끌고 가이드 역할로써 다녀와 총 2번의 종주를 마쳤다. 입대 한 달 전에는 배낭만 메고 물음표 형태의 방향대로 국내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외 여러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돈이 많지 않다 보니 국외보다는 국내여행을 많이 갔었고, 코로나가 끝나는 대로 최대한 많이 가볼 생각이다. 사족을 좀 보태자면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남미를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방구석에서 언어부터 익히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여행을 갔었고, 가려는 이유는 여행은 알 수 없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아무리 세우더라도 당연히 계획대로 되지 않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우연과 인연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처음 마주친 순간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시켜준다. 힘든 순간도 많았고,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낸 적도 많은 만큼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내가 솔직하게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서 솔직하고, 외향적이며 자신감을 가진 청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남들은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을 굳이 선택해서 울릉도, 독도를 향해갔다. 나는 남들의 선택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길을 가고 싶었고, 내 자존감을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독도경비대를 선택했다. 단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편한 적도 많았지만 힘든 적은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고,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섬에서의 경험을 하였다. 울릉도 주민, 여행객과 친해져도 보고, 독도에서 관광객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가슴이 뜨거워져 보기도 했다. 애국심도 커졌지만 무엇보다도 자기애와 자존감이 많이 올랐고,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꽃보다 청춘, 누나"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안에서 특히 '이승기'라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공감을 많이 느낀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크게 모난 소리 듣지 않고 연예계 생활을 이어나갔던 그이지만 이 프로그램 중에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누님 4명을 인솔하며 처음 부닥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힘들어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계속 노력하고, 도전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에서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의 일화는 '집사부일체'와 같은 예능에서도 비치곤 했다.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그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힘든 순간이 많아 보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고, 끝까지 붙잡으려고 한다. 계속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자존감이 낮을 수 있다. 내향적이고, 소심할 수 있다.
절대 오답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두드리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싶었고,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두려움, 고정관념의 벽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힘들고, 쉽지 않았지만 이는 나만의 다채로운 인생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이 다채로웠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승기처럼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도전을 오랫동안 해나가고 싶다.
아직 끝이 아니기에 이전과 앞으로의 도전기를 함께 공유해볼까 한다.
독자분과 함께 다채로운 인생을 그려나가고 싶다.
(표지 출처: Festival of 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