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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리 May 06. 2020

딸과 단 둘이서 섬 백패킹

차로도 갈 수 있는 원산도 백패킹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이 완화된 후 찾아온 황금연휴. 온 가족이 다 함께 캠핑을 가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취지와 맞지 않은 듯하여 고심 끝에 둘째 딸과 단 둘이 백패킹을 떠나기로 한다.


작년에는 둘째와 산속 임도 걷기 백패킹을 했었고, 올 해는 작년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섬으로 가기로 둘이서 결정을 지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아빠와 조개 잡이를 하고 싶은 둘째의 바람과 조용한 해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서해 낙조를 원 없이 구경하고 싶은 아빠의 희망 사항이 합쳐진 결정이다. 


백패킹에 필요한 식재료는 전부 집 근처에서 구매를 하고, 내려가는 동안 휴게소를 거치지 않는 등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로 하였다. 모든 준비를 끝내자마자 차를 몰고 서해안으로 향했다. 출발한 일시는 5월 1일 오후 1시. 전 날 석가탄신일엔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이번 연휴에 한꺼번에 표출하려는 듯 수많은 차들이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 많이 막히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일한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처참히 뭉개지고 말았다. 차들이 서해안 고속도로로 몰리며 고속도로 올라타기도 쉽지 않았고, 안면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정체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막히지 않는다면 3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4시간이 넘게 걸려 결국 원산도 오봉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오봉산 해수욕장은 우리 부녀가 하룻밤을 지낼 장소가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이 곳에서 높지 않은 산을 넘어 있는 이름 없는 작은 해변. 지도로 미리 검색만 했을 뿐, 가는 길이 제대로 있는지도 모르고, 실제 해변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가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키 큰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그 아래로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활엽수 사이로 넓진 않지만 평탄한 산길이 또렷이 보였다. 야트막한 산이라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 능선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도 예상외로 길이 잘 뚫려 있었고, 그 내리막길 끝에는 지도로만 봐왔던 우리만의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이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다가 실제 그곳을 찾아가 지도와 실제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곳은 지도에서 보고 상상한 것보다 더 큰 해변이었다. 그리고 지도에는 보이지 않던 해양 쓰레기가 해변 안쪽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이 곳에 와서 쓰레기를 버렸다기보다는 대부분 태풍이나 물난리에 바다로 떠내려왔다 이 곳에 쓸려온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해변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쓰레기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있었으니. 우선 날씨가 좋지 않다. 상상하던 수평선  쏟아지는 햇빛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엔 회색 구름이 가득하다설상가상으로 이 곳에 도착한 시각이 바닷물이 점점 해변으로 몰려오는 밀물 시점이다. 물이 빠져야 조개 캐기를 있는데 물이 밀려들어오는 보니 조개 캐기도 쉽지 않겠구나 라는 불길한 예감이 문득 들었다. 혹시나 해서 물때를 확인해 보니 간조 시각은 새벽 3시와 오5시경. 아름다운 서해의 일몰과 조개 캐기는 이번엔 어려울 같다. 빨리 포기를 하고 오랜만에 만난 바다를 즐기기로 한다. 








해변 여기저기 탐색하고, 파도와 술래잡기 놀이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개가 없는지 모래를 파보기도 하고, 조개 대신 바위에 붙은 소라를 잡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보이지 않던 해가 떨어졌는지 날이 어두워지고 낮보다 바람 세기가 조금 더 강해졌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저녁 날씨는 꽤 쌀쌀했다. 이번 저녁 주 메뉴도 라면이다. 작년 임도 백패킹 때 깜빡하고 안 챙겨 곤혹을 치른 터라 이번에는 출발 전 라면을 챙겼는지 여러 번 확인을 했다. 그 소중한(?) 라면을 맛나게 먹고 바람을 피해 텐트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있을 땐 평온하게 들리던 파도 소리는 잠자리에선 꽤나 크게 들렸고, 그 소리에 여러 번 깨곤 했다. 날이 밝아지기 시작할 즈음부터는 이른 아침 조업에 나선 어선의 엔진 소리가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아침에도 어제 오후와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늘이 흐리고, 바다도 하늘처럼 회색빛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선원들이 조업으로 바삐 움직일 테지만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적하기만 하다. 작게 보이는 배는 움직임이 없고, 느린 속도로 끝없이 들이치는 파도도 정적이다. 가끔 작업을 마친 배가 지나가면서 그림 같은 풍경에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바다는 그렇게 평온했다.

 


   









이제 짐을 정리하고 어제와 오늘 동안 우리만의 해변이었던 이곳을 떠난다. 돌아가는 길도 바다만큼 평화롭다. 한 번 걸어본 길이라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길 곳곳엔 어제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봄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서도 차가 다니는 도로 가에는 유채꽃이 활짝 피어 꽃길을 만든다. 차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 후 그냥 떠나지 않고 오봉산 해수욕장을 향한다. 당분간 보기 힘들 바다와 좀 더 있고 싶어서다.









우리가 머물렀던 해변보다 몇십 배 더 커 보이는 해수욕장을 보고 둘째가 좋아서 막 뛰어다닌다.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아빠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아름다운 일몰도 보지 못하고 조개 캐기도 성과를 못 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풍경 좋고 한적한 해변에서 딸과 단 둘이 보낸 것 그 자체 만으로 100%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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