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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리 Jul 14. 2019

가평 잣나무 숲 백패킹

계곡 트래킹의 재미와 잣나무 숲에서의 아늑함을 만끽하다



올해 처음으로 수도권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7월 첫 주말, 박 배낭을 둘러매고 가평 어느 작은 계곡으로 찾아들었다. 35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지만 한여름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진 계곡으로 들어서자 산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적당히 내려간 느낌이다. 


이 곳은 물놀이를 할 정도로 큰 계곡이 아닌 데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장마에 걸맞은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아 계곡에 수량이 적다. 한여름 풍부한 수량으로 흘러내리는 시원함이 없어 아쉽기는 하나, 계곡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며 듣는 계곡물소리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귀를 편안하게 만든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이 만만치가 않다. 산세는 부드러운 육산으로 보이나,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에는 바위가 많다. 경사진 바위골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라 자칫 발을 헛디디면 계곡 아래로 떨어질 수 있어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는다. 가끔은 두 발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어 손까지 사용해 겨우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은 급경사 바위에서 작은 폭포가 된다. 그 폭포 아래에는 어김없이 소(沼)가 있어 그곳으로 뛰어들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덥지 않지만, 무거운 박 배낭을 메고 계곡길을 오르느라 등에 땀이 흥건하다. 배낭을 내팽개치고 당장이라도 입수하고 싶지만 챙겨 온 여벌의 옷이 없어 시원한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며 뜨거운 몸속의 열을 빼낸다.






계곡 옆 좁다랗고 가파른 길을 가다 보면 가끔은 희미해서 길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고, 계곡을 건너야만 다시 길이 이어지는 곳이 여러 번 있어 길이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보지만, 신기하게도 길은 계곡을 따라 쭉 이어진다. 그 좁다란 길을 따라 곳곳에 조그만 폭포와 소가 나타나 지겨울 틈이 없다. 








한 참을 올라가도 수량이 줄지 않고 물은 쉼 없이 흘러내린다. 길 옆으로 잣나무가 제법 보이기 시작한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다. 계곡을 앞으로 두고 계단식으로 된 잣나무 숲이 오늘의 박지다.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치기 전에 의자와 테이블을 꺼낸 후 막걸리부터 시원하게 한 잔 꿀꺽 들이켠다. 산행 후 마시는 막걸리 맛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오늘은 잣나무 숲에서 마시는 잣막걸리다. 그 맛을 도저히 표현을 할 수가 없어 "카아~" 감탄사만 시원하게 내뱉을 뿐이다.














잣나무                     

학명: Pinus koraiensis

영문명: Korean nut pine or Korean white pine

위키백과 설명: 구과목 소나무과 식물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극동러시아, 일본 혼슈와 시코쿠에 분포하며, 한국에서는 대부분 고산지대에서 자생하고 있다. 수고는 30m가 넘게 자라며 흉고직경 역시 1m가 넘게 자란다. 한대성 수종으로 남해안과 제주도 같은 온대성 지방에서는 생육이 불량하다. 목재는 건축(건구, 내장), 가구, 포장, 합판, 펄프, 목탄으로 이용되며, 열매는 식용 혹은 약용으로 쓰인다. 



한대성 식물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평안도, 함경도에 주로 분포하고 남한의 경우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 주로 자란다. 그중 가평이 잣열매 생산지의 40~45%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가평에는 백패커들에게 잘 알려진 잣나무 숲이 꽤 많다. 연인산, 서리산, 축령산, 대금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이 잣숲 대부분은 화전민들이 살던 곳을 강제 이주시킨 후 잣나무 숲을 조림하여 평평하거나 계단식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찾은 이 곳도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저기 돌로 쌓은 흔적이 있어 화전민들이 살던 곳인 듯하다. 


잣나무 숲은 백패커들에게 인기 있는 박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로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아늑함 (시각)과 푹신한 바닥 (촉각)


일직선으로 30미터까지 높이 자라는 잣나무를 우러러보면 경외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키다리 나무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자연의 일부가 된 듯 겸손해지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햇빛을 가려주니 아래쪽에서는 쉬기 좋은 그늘이 충분히 만들어진다. 






잣나무 아래 그늘이 많은 이유가 또 있는데 그건 바로 잎의 개수에 있다. 소나무 잎 2개, 리기다소나무 잎 3개, 잣나무 잎은 무려 5개다. 잎이 많다 보니 그늘을 더 만들어내는 건 당연한 이치. 그늘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충실히 한 후에는 바닥에 수북이 쌓여 양탄자처럼 푹신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텐트 안에 누웠을 때 등이 배기지 않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늘이 많고 바닥에 솔잎이 여러 겹 깔리다 보니 잣숲에는 잡목이 상대적으로 잘 자라지 않는 듯하다. 인공조림인 이유가 크겠지만 아무튼 잣나무 특성으로 인해 잣숲은 여러모로 깔끔한 인상을 많이 준다.  

  






●  잣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상쾌한 피톤치드 냄새 (후각)


이른 아침부터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산 정상과는 다르게 잣나무 그늘 사이로 조심스레 스며드는 햇살로 조금 늦게 둘째 날의 여행 일과가 시작된다. 텐트 문을 열었을 때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상쾌한 잣나무 숲 향은 백패커들이 잣숲을 찾는 또 다른 이유다. 후각이 가장 강력하게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감각이라고 한다 (책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에서 인용). 그래서인지 잣잎이 푹신하게 깔린 바닥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흙냄새와 수백 그루 잣나무 숲에서 발생하는 상큼하고 시원한 느낌의 이 향은 단번에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매일 아침 이런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 잣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의 양은 편백나무나 구상나무 등에 비하면 많지 않다고 한다. 

편백나무 > 구상나무 > 삼나무 > 전나무 > 잣나무, 소나무 


피톤치드 양을 떠나 잣나무 숲에서 맡는 상쾌하고 근사한 향기는 꽤나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서 잣나무 숲을 한 번 찾으면 그 매력에 푹 빠져 다시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평하고 푹신한 바닥에 등을 대고 푹~ 잘 잤다. 기분 좋은 향이 사방에 진동을 하고, 조용한 클래식 같은 계곡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오감이 만족스러운 아침이다.


핸드폰 전파도 못 미치는 곳이라 오지에 온 듯한 느낌이 강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니 온 듯 자리를 말끔히 정리한 후 문명의 세계로 향해 다시 아슬아슬한 계곡길로 발을 내딛는다.











시원한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무사히 이 계곡을 빠져나왔다. 계곡 트래킹의 묘미와 잣나무 숲의 안락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백패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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