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 베테랑 선수의 클래스

[나는 도핑검사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기

by 이건

도핑검사는 건전하고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기본적으로 도핑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정식 선수로 등록된 사람이어야 하는데 만약 선수로 등록이 되어 있다면 미성년자와 장애인도 예외는 될 수 없다.


다만 생활 체육인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검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얼마 전 가수 김종국이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도핑검사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일단 선수로 등록이 되었다면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도핑검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만약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경우 도핑방지 규정 위반으로 최대 4년까지 선수 자격이 정지될 수 있다.


경기 출전을 앞둔 선수들이 준비하고 있다.


규정 위반에 따른 징계는 개인정보가 공개될 뿐만 아니라 선수 생명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도핑방지 규정 위반은 단순히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은 물론이고 부정행위, 공모, 금지약물 거래 등 여러 처벌조항들이 존재한다.


일단 도핑검사 대상자로 선정되면 해당 선수는 도핑검사관 또는 샤프롱(Chaperone, 동반인)으로부터 도핑검사 대상자라는 통지를 받는다. 이때부터 선수는 도핑검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적인 감시를 받게 된다.


통지 후에는 선수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소변이나 혈액, 또는 두 가지 모두 중에서 어떻게 검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전달된다.


선수가 이를 이해했다면 코치 등 대리인과 통역을 포함해 최대 2명까지 동행해 도핑관리실로 이동하게 된다. 올림픽의 경우에는 시상식과 인터뷰, 그리고 프레스 콘퍼런스(Press Conference)까지 마친 후에 도핑관리실로 이동한다.


참고로 도핑관리실은 보안구역이므로 기자를 비롯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며 정당한 권한과 출입증을 가진 사람들만 출입이 허용된다. 이는 선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이기도 하다.


이때 검사를 받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은 통지를 받은 시점부터 물을 마시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한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것이 끝이 아니라 도핑검사까지 끝나야 비로소 모든 경기가 마무리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목의 선수인지에 따라 검사시간은 차이가 나는데 보통 마라톤이나 체중조절이 필요한 복싱, 보디빌딩 선수들의 경우 소변시료를 제공하는 시간이 타 종목에 비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예전에 창원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는 한 유럽 선수가 최소 요건인 90ml 이상의 소변시료를 제공하는데 무려 8시간이나 소요된 적도 있었다.


썰매 종목의 경우 대게 한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선수는 보통 생수 1~2병 정도를 마시고 스트레칭이나 복부 마사지를 하면서 소변이 나올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


소변시료 제공을 위해 마련된 선수용 음료


그렇다고 너무 많은 물을 마시게 되면 소변의 비중이 묽어져 실험실에서 분석이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생수 두 병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미 이런 프로세스에 익숙한 선수를 만나는 것은 도핑검사관에게는 행운이다.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수가 도핑검사 과정에 익숙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적어 오히려 검사관을 배려해 주는 여유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수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일을 하는 보람과 즐거움이 생긴다.


간혹 외형만 프로이고 마인드는 아마추어인 선수들도 있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검사관에게 “저 모르세요? 제 얼굴이 신분증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도 있고, 왜 나만 검사하냐며 우주의 중심이 자신인 줄로 착각하는 얼빠진 프로선수도 있다.


한 선수만 계속 지켜볼 정도로 우리 도핑검사관들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세계대회와 세 번의 올림픽을 거치면서 만난 메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도핑검사에 임하는 자세도 메달리스트였다. 나는 왜 그들이 월드클래스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