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나는 도핑검사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기

by 이건

2022년 2월 21일.

17일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막힌 하늘 길은 한국으로의 직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도쿄를 경유해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귀국 하루 전.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중국 도핑검사관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건넸다. 특별히 더 많은 수고를 한 도핑관리실 매니저 가오 유안과는 서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마움과 아쉬운 마음을 눈물로 전한다.


후다닥 호텔로 돌아와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지를 챙기고 유니폼이 가득 담긴 캐리어까지 챙겨 로비로 나오니 이번에는 호텔 자원봉사자들과 보안요원들이 배웅을 나와 있다. 내가 전에 한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11.jpg 배웅을 나온 호텔 보안요원들과 함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너무 황송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그냥 그들이 이끄는 대로 염치 불고하고 몸을 맡긴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추운 날씨에도 고집을 부리며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또 고마운 눈물이 난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려준 호텔 자원봉사자 미스터 양과 미스 리사.


저녁쯤 도착한 베이징 공항은 텅 비었으나 금세 떠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IMG_1739.jpg 저녁 6시. 텅 빈 베이징 캐피털 인터내셔널 공항


33.jpg 방역복을 입은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


애당초 연예인처럼 공항 패션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가방만큼은 가볍게 챙겨 마치 여행 좀 다녀본 고수의 느낌을 주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실패다. 말 그대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허둥지둥 다녔으니 모양새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새벽 2시 25분.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면 계속해서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태양에 맞춰 도쿄에 도착하고 또 10시간 대기. 함께 동행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또 함께 졸다가 마침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도쿄 나리타 공항. 베이징 - 도쿄 - 한국. 하루에 3개국 여행이라니...


마침내 인천공항.

코로나 검사로 입국절차가 두 배는 더 까다로워졌다. 한 손에는 입국서류를 들고, 또 다른 손으로는 필요한 앱을 설치하면서 긴 줄에 합류한다. 가까스로 짐을 찾아서 들고 나왔지만 마음대로 집에 갈 수도 없다. 자가용이나 정해진 방역 버스와 택시만 이용해야 한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마치 행복한 꿈을 꾼 듯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린 베이징의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비록 일은 많았으나 전혀 힘들지 않았고 밖에 나갈 수도 없었으나 좋은 사람들과 한없이 행복했던 시간들은 어릴 적 순수의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가는 듯하다.


그동안 도핑검사관으로서 세 번의 올림픽을 경험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1년 도쿄 하계올림픽, 그리고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도핑검사관으로서만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많이 성장했다. 한없이 어리고 좁았던 마음도 한층 넓어졌다. 이제 남은 숙제는 그동안 받았던 사랑과 배려를 어떻게 나누고 실천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동안 <나는 도핑검사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기>를 응원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